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잘 왔다간다'라는 말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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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 4.21)
원현린 칼럼 /
'잘 왔다간다'라는 말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인간 수명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오래 사는 것을 오히려 걱정하는 시대가 됐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오래 산다면 걱정할게 아니라 분명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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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는 경제발전과 의학의 발달이 가져다 준 선물이지만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차라리 고통일수도 있다. 그저께 또 한 사람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한 젊은 여성 모델이 자살 전 “아무리 생각해봐도 백 번을 넘게 생각해봐도 세상엔 나 혼자뿐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한다. 사람들은 인생은 어차피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인데 안타깝다고들 했다.
지금 온 산과 들에는 진달래 개나리 벚꽃이 만발하고 있다. 먼저 핀 꽃은 먼저 진다. 열흘 붉은 꽃 없다. 이것은 만고의 진리다. 이처럼 순서대로 지고 떠나야 하는데도 신이 내린 수명을 지키지 않고 앞서 먼저 가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필자는 본란을 통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 땅에 가자 해놓고…’, ‘자살과 행복추구권’ 등의 제하에 누차 자살만은 하지 말 것을 강조한 적이 있다.
자살에 대해 여러가지 예방책을 내놓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하다. 아랍의 속담에 “어떤 사람에게는 서있는 것 보다는 앉아있는 것이 낫고 앉아 있는 것보다는 누워있는 것이 낫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는 서있는 것이 앉아있는 것보다 낫고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다. 자살자들은 아마도 오죽하면 이 속담과 같이 차라리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여 자살을 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톨스토이와 더불어 러시아의 대문호로 불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기적적인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살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형을 언도받은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형 집행 전 마지막 5분이 주어졌다. 이승에서 살아 있을 수 있는 마지막 5분이다. 그는 인생에서 남은 최후의 5분을 어떻게 보낼까하고 생각했다. 먼저 함께 옆에 있는 같은 처지의 사형수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네는데 2분,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을 되돌아보는데 2분, 나머지 1분은 나를 이 땅에 오게한 자연을 둘러보는데 쓰기로 마음먹었다. 흐르는 눈물을 삼키며 작별인사를 하고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다보니 2분이 지나갔다. 이제 3분 후면 죽는구나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28년 세월을 허비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다시 한 번 생이 주어진다면 열심히 살 수 있을텐데….
이렇게 후회하고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던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황제의 특사가 내려져 죽음 직전에 살아난 그는 시베리아 유형 중에서도 시간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살았다. 그는 이후 32년을 더 살았고 온 영혼을 다 바쳐 글을 썼다. ‘죄와 벌’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백치’, ‘악령’, ‘가난한 사람들’등의 작품을 남겼다.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사마천 또한 죽음 직전에 살아나 불후의 역사기록 ‘사기’를 남겼다. 그는 남자로서 죽음보다 못한 궁형을 택해 살아남아 역사서를 완성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그가 생식기를 거세당하는 치욕을 당하면서까지 살아남은 것은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사서 ‘사기’를 완성하여 후세에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언급한 두 문장가의 생애처럼 기구한 운명도 드물 것이다. 이들이 거짓말처럼 살아난 과정을 들을 때마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느껴지곤 한다. 매 순간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지막 5분을 생각한다면 자살할 마음을 먹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 했다. 지금 있는 그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이고 그 자리가 바로 최고 행복한 세계라는 의미다. 하루하루를 후회없이 알차게 살아야 하겠다. 한 구도자의 묘비명처럼 ‘괜히 왔다간다’라고 새기지 않고, 훗날 떠나면서 스스로의 묘비명에 ‘잘 왔다간다’라는 말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2011년 04월 21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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