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비장방(費長房)의 지팡이(竹杖)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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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 4. 8)
나채훈의 중국산책 /
비장방(費長房)의 지팡이(竹杖)
1899년, 미국에 공사(公使)로 다녀 온 이하영이 선물 보따리를 풀고 기차 모형을 꺼내 고종 앞에서 시동해보였다. 그리고 고종과 자신의 별장이 있는 개항장 인천까지 기차를 놓으면 담배 한 대 피울 참에 이를 수 있다고 아뢰었다. (참고로 이하영의 별장은 오늘의 답동 가톨릭성당 주교관 뒤쪽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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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은 이 말을 듣자, 뭣이 그렇게 바빠서 서둘러 간다는 말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다. 기차에 대해 무지했기에 갸우뚱했다지만 요즘처럼 빠른 것만이 선(善)인 것처럼 되어있는 상황에서는 ‘곱씹어 생각해 볼만한 갸우뚱’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동남권 신공항을 두고 부산 앞바다냐 경북 밀양이냐 하고 설왕설래하다 없던 일로 하면서 이 대통령은 “공약을 지키는 것이 도리이나 다음 세대까지 부담을 물려주는 사업을 대통령 혼자 편하자고 밀고 나갈수는 없었다”고 했다. 말은 옳다.
박근혜 전 대표는 “정부나 정치권이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아야만 예측이 가능한 나라가 된다. 내 입장은 신공항 계속 추진이다”고 했다. 이 말도 틀리지 않는다. 한편에서는 대안으로 영남권과 인천공항을 2시간내에 연결하는 직통 고속철도(KTX)와 동남권 KTX를 건설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한다.
부산, 대구 지역에서 인천공항까지 접근성을 최대한 높여 신공항 무산에 따른 지역의 불만을 가라앉혀 보겠다는 의도와 광명역에서 인천공항까지(58.7km) KTX를 놓고 현재 시속 3백km 수준을 3백50km로 높이면 대구에서 인천공항까지 1시간30분, 부산에서 인천공항까지는 2시간 이내에 연결되므로 동남권 신공항의 필요성이 사실상 없어진다는 논리다.
더하여 대구~마산, 진주 노선과 경북내륙 노선 등 동남권 KTX를 조기에 착공하는 방안도 검토하여 전국을 KTX네트워크로 연결, 전국 어디서나 2시간이내에 인천공항에 닿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한다.
이와 함께 부산, 대구 등지의 KTX 역사(驛舍)에서 항공 수하물을 부치면 공항에 도착하여 별도로 짐을 부치는 절차없이 바로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는 ‘원스톱 수하물 처리 시스템’을 갖추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한다.
선거 때마다 신공항 공약을 내세워으로 ‘재미 좀 본’ 여당 의원 입장에서 대통령에게 고함만 친다고 될 일이 아니었기에 궁여지책(?)으로 전국 KTX 네트워크 이야기가 나오는 건지, 신공항 추진쪽에 서는 게 유리하냐 아니면 재검토쪽에서 서는 게 유리하냐로 주판알 튀기기 바쁜 야당의 득표용 ‘토목 공약’가운데 새로운 것인지 모르겠으나 아직도 토목이나 물류외에 우리의 미래를 열어갈 비전이 없다는 것인가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오는 걸 어쩌랴.
경인철도를 놓고 나서 경부선을 놓을 때 철도선무학사(鐵道宣撫學士)를 뽑아 양반 유생들을 계몽시켰다. 선무학사가 ‘아침에 부산을 떠나면 저녁에 한성(서울)에 도착하니 그 아니 편리하겠소’하니, 한 유생이 대꾸했다. ‘아니 지금 비장방(費長房)의 술수를 말하는 것이오. 머리가 돈 자의 꿈이니 가소롭도다.’ 유생의 당시 상식으로 ‘아침을 부산에서 먹고 저녁을 서울와서 먹다니…’하고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비장방이야기는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신선(神仙) 지망생 경험담이다. 한 사내가 시장에서 놀라운 걸 보았는데 약을 파는 노인이 처마에 걸어둔 호로병 속으로 들락날락 하는 것이 아닌가. 사내는 노인이 신선임을 알고 구도(求道)를 청했고 뜻을 이뤄 입산수도에 들어갔다. 호랑이가 득실거리는 산중에 혼자 앉아 있어도 두렵지 않고, 만근이 넘는 큰 바위를 썩은 새끼줄에 묶어 가슴 위에 드리우고도 꿈쩍하지 않을 정도의 수련을 쌓았다.
하지만 인간세상이 그리워 고민끝에 도중 하차하게 된다. 노인은 그에게 대지팡이(竹杖)를 주며 타고 가라고 했다. 이 지팡이는 신선세계의 초음속 비행기인지라 순식간에 고향집에 도착했고, 지팡이는 용이 되어 멀리 날아갔다. 여기서 빨리 달리는 사람을 비장방이라 했던 것이다.
면적 10만㎢의 대한민국은 G20 국가 가운데 최소국이다. 바로위의 영국에 비해서도 절반이 안된다. 칠레처럼 남북으로 길지도 않다. 이 작은 국토에서 경부선을 비장방이라 비웃은 유생의 지적 역시 ‘다시 생각해볼 문명’의 의미가 아닐런지.
2011년 04월 08일 (금)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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