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양탕국(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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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1. 4. 8)
양탕국
/710 회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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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탕국'을 한자로 쓰면, '양탕(洋湯)'이다. '양'은 '서양에서 온 것'이라는 뜻의 접두사이고, '탕'은 '국'의 높임말로 제사에 쓰는 국물이 적은 국, 혹은 '국'의 뜻을 더하여 쓰는 접미사로 곧 '서양에서 들어온 국'이란 의미이다.
그런 점에서 개화기에 들어온 커피를 '양탕국'이라 한 것은 그럴 듯한 우리식 조어(造語)였는데, 일본은 에도시대 때 네덜란드서 커피가 들어오자 난어(蘭語) '고피(Koffie)'를 가차해 '고히'라고 불러 통용하고 있다.
그것을 한자 '가배(王加, 王非)'로 표기한 것은 일본 오가키 번[大垣藩]의 난학자(蘭學者) 우다가와 요안으로 그가 만든 네덜란드어 대역사전에 처음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어 '카페이(口加,口非)'도 비슷한 가차다.
'양탕국'에서 '가배', '고히'를 거쳐 오늘날 대중적 기호음료가 된 '커피'의 정착사는 명칭 변천사만큼이나 다양한데, 국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한국사(제44권·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는 그에 오류를 범하고 있다.
"1892년 구미제국들과 조약이 체결되면서 외국 사신들에 의해 커피가 전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1902년 손탁은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은 자리에 서양식 호텔을 개업하였고, 이곳에서 처음 커피를 팔았다."(같은 책 484쪽)
그 같은 잘못된 기술은 그 전에 이미 인천에 국내 최초인 대불호텔이 성업 중이었고, 1885년 4월 이 호텔에 투숙했던 아펜젤러 목사의 '선교보고서' 등을 몰랐던 데 있는 듯싶다. 최근 인천시립박물관이 전시중인 '양탕국에서 커피믹스까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한국사와 지역문화사를 여러 자료로써 보정하고 있는 면이 돋보인다.
/객원논설위원
2011년 04월 0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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