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동양평화기원비'와 '몰자비'(퍼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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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 4. 1)
나채훈의 중국산책 /
'동양평화기원비'와 '몰자비'
비석만큼 역사의 영욕을 간단하게 가늠해주는 상징물도 없을성 싶다. 세워져 있을 마땅한 자리가 새겨진 비문의 내용이 오히려 치욕의 면모를 새삼 웅변해주는 경우가 흔하다. 비림(碑林)이라 해서 온갖 비석을 모아둔 곳에 가보면, 형편없이 치졸한 관료들의 이름에다 공덕(功德)이니 선정(善政)이니 영세불망(永世不忘)이니 하는 낯뜨거운 찬사를 새겨 놓은 것이 꽤 많다. 그리고 매국노의 이름이 버젖히 적힌 비석이 애국지사의 그것과 동렬에 놓여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지난주 일본의 규수에 있는 한 사찰 입구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기원비(東洋平和祈願碑)’와 중국 서안시 서북쪽 양산에 있는 무측천의 ‘몰자비(沒字碑)’는 곱씹어 생각해볼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알려진 바로 일본의 뜻있는 인사들이 규수 시가현 소재 무량사입구에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 사상을 기리는 비석을 세워 순국 101주년(3월26일)전날에 제막식을 올리고 경건한 추념식을 갖었는데 무엇보다도 일본인들이 ‘명치유신을 이끈 이등박문을 죽인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나 암살범으로 여기던 인식’을 바꿔 안 의사의 큰 뜻에 공감한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물론 일본인 모두 그렇게 여기는 것은 아니겠으나 우리의 경우도 ‘조선침탈의 원흉 이등박문을 처단했다’는 식의 사실관계에 지나치게 몰려 있는걸 생각하면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 사상을 한층 더 승화시킬 계기가 되리라는 의미가 적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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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측천의 몰자비는 새겨진 비문이 없었다. 건릉은 당(唐) 고종과 무측천이 합장되어 있는데, 양산(梁山)이라 불리는 자연 그대로의 이 산을 묘소로 만든 것. 고종을 이곳에 장사지낼 때 무측천은 당연히 자신도 차후에 여기 묻힐 것이라 여겼으나 그녀의 사후, 합장 반대의 의견이 맹렬하여 겨우 묻힐 수 있었다. 그녀가 먼저 죽은 고종을 장사지낼 때 건릉 입구 왼쪽에 자신이 지은 고종의 현덕비를 세우고, 오른쪽에 마주보며 석비를 세웠는데 비문을 새기지 않았다. 자신은 살아 있었으니 비문을 새기게 할 수 없었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공덕이 말로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기에 글을 새기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조정대신들의 맹렬한 반대의견을 물리치며 친모를 장사지낸 중종의 입장에서 써넣을 글이 마땅치 않아 여백으로 두었을 가능성이 많다. 당나라를 찬탈하고 주왕조를 세워 여황제가 되었다는 내용을 그곳에 새겨 넣을 수 없지 않은가. 당대가 계속되는 긴 세월동안 이 거대한 석비에는 글자가 없었다. 얼마후 ‘몰자비’라는 말은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교양이 없고 글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 일반에 널리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몰자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낙서하듯 글자를 새겨서 빈틈이 없을 정도인데 여진의 문자까지 있으나 대부분 풍상에 마멸되어 읽기조차 힘들다. 그렇다고 그 내용들이 그녀의 치적이나 공덕을 기리는 내용은 아마 아닐 것이다. 무측천이 그곳에 쓰여지기를 기대했던 글귀와는 정반대의 글귀가 대부분일 것으로 여기는 연구가들이 다수다.
무측천의 악랄함은 고종의 첫황후였던 왕황후와 총비 소숙비를 절단하여 술독에 처넣게 한 후에 시신까지 자르게 했다고 한다. 정말 그지경이었을까 하고 역사의 기록조차 비참한 광경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그녀는 고종의 부황 태종의 궁녀 출신으로 부자(父子) 2대에게 몸을 준 도덕적으로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더구나 그녀의 장기 집권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시무시한 공포 정치때문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물론 그녀를 옹호하는 사가도 있다. 사마광은 <자치통감>에서 ‘인재를 등용하여 업적을 쌓았다’고 했으며, 이탁오는 <장서(藏書)>의 인물평론에서 ‘사람보는 안목이 뛰어났고 백성들의 평안을 염두에 두었다’고 했다.
백성의 고혈을 짜내서 낯간지러운 문구가 새겨진 지방 관료들의 송덕비, 매국노의 이름이 있는 비석에 비하면 차라리 몰자비가 더 정직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에 비해 일본 땅의 안중근 의사 추모비는 우리모두가 옛 일을 떠올리며 자랑할만하지 않은가.
2011년 04월 01일 (금)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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