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배수진'의 정신에너지를 승화시켜야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1. 4.29)
나채훈의 중국산책/
'배수진'의 정신에너지를 승화시켜야
내년 대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과 전망이 얽히고설킨 4.27 재보선의 결과가 드러났다. 먼저 승자에게 축하를 보내고 패자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면서 ‘실패는 대부분 물질의 결핍보다는 정신에너지의 결핍에서 일어난다’는 평범한 진실을 떠올린다. 오랜 옛날 중국에 우공(愚公)이라는 말 그대로 어리석은 노인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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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90세쯤 되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세상을 하직할 날도 얼마 안 남았을 연령이었다. 우공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의 왼쪽과 오른쪽에 우뚝 솟아있는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屋山) 때문에 여러모로 갑갑하게 생각하던 차에 이제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후손을 위해서라도 뜻있는 일을 할 요량으로 이 두 산을 깎아낼 준비를 시작했다. 이를 본 이웃 사람들이 도무지 될 일이 아닌 걸 한다고 비웃었다. 우공은 오히려 큰소리쳤다.
“두고 보시오. 내 비록 늙었으나 내가 하다가 죽으면 아들이 계속할 것이고 아들이 죽으면 손주 녀석이 할 테고 그 다음 자자손손 깎아내면 언젠가는 반드시 평지가 되지 별 수 있겠소? 산이 자라지는 못할 테니 분명 그리 될께요.”
이 기골찬 소리를 들은 두 산의 신령이 자신의 거처가 없어질 걱정이 되어 옥황상제를 찾아가 상의했다. ‘저런 고집 센 놈한테는 당할 수 없겠구나’ 하고 판단한 옥황상제는 두 산을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기게 했다. 이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는 물론 우화에 지나지 않으나 모택동이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정신에 포함시킬 정도로 중국인의 미래 에너지를 상징하는 메시지가 되었다.
‘할 수 있다’는 신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꿋꿋한 자세야 말로 어떤 철학이나 비전보다 소중한 지도자의 자세라는 말이다. 며칠 전 손학규 대표는 분당의 선거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7일 선거에 내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국민 가슴 한쪽에 내 운명을 맡기겠다’고 했다.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제가 할 일이 없음을 알고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도 했다. 주위에서는 ‘정치생명을 걸고 배수진(背水陣)을 쳤다고 보면 된다’고 부연 설명까지 했다.
배수진이 얼마나 무서운 작전인가? 흔히 초한쟁패시대(楚漢爭覇時代)에 유방 휘하의 명장 한신이 소수의 군사로 대군을 무찌르기 위해 자기 편 군사를 강 쪽으로 몰아 후퇴해도 죽을 테고 맞서 싸워도 희망이 없겠으나 혹시라도 이긴다면 하는 실낱같은 기대감으로 용전분투하여 끝내 승리를 쟁취했다는 고사 정도로 회자되지만 말하기가 쉬워서 그렇지 얼마나 어려운 선택이고 결단일 것인지. 지금까지 쌓아올린 자신의 모든 명성과 지위, 재산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게 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는 일 아닌가.
물론 오늘날의 선거에서 배수진을 쳤다고 그 옛날의 전쟁처럼 모든 걸 잃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작 1년짜리 국회의원직 때문에 제1야당의 대표직과 대권주자의 꿈을 접어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출마를 강권하다시피 한 배경에 경쟁자 측의 아리송한 의도도 점쳐지고, 상대당의 텃밭이라는 험지에 들어가 홀로 싸워야 하는 어려움을 한 정치인의 모험담 정도로 바라볼 시각도 만만치 않았으니 말이다.
훌륭한 선장(船長)은 결코 육지에서 길러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탁월한 지도자는 난국을 거치면서 단련되고 그 진가를 발휘한다. 명철하고 용기 있는 개혁적 리더십이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진정으로 요구된다. 이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어쩌랴. 이 나라 선거판에서는 아직도 리더십의 본질을 감상적으로 헤아리고 한풀이로 받아들이려는 기세가 도도함을…
배수진의 장수는 4.27에서 승전가를 불렀다. 그렇다고 이제부터 순풍에 돛 단 배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분당의 중산층 유권자들이 전국의 중산층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려니와 당내외의 강력한 경쟁자들과 맞서야 할 높은 고지가 중첩되어 있다.
손학규 대표가 이런 배수진의 어려운 결단을 헤아리고 지지해 준 분들의 충정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내년 대선이 진정한 지도자를 선택하는 ‘깨어있는 국민정신의 축제’가 되도록 전력투구 하는 것만이 이번 배수진이 가리키는 진정한 방향이리라.
2011년 04월 29일 (금)
인천신문 itods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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