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중산학교 110년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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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1. 5.16)
중산학교 110년
/( 726)회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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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화교 교육의 효시는 1902년에 문을 연 '인천화교소학'이었다. 지난 주로 개교 110주년을 맞았다. 초창기에는 교사도 없고, 학생 수도 적어 인천화교협회의 전신인 화교상무총회를 빌려 썼다고 한다.
학제는 남녀 공학 7년제. 인천 이외의 지역에서 온 자녀들이 늘어나자 김경장(金慶章) 당시 교장이 1923년 중화회관 뒤편에다 빨간 벽돌 교실 3칸을 마련해 가을 학기 때 옮겼고, 학제도 6년제로 바꾸었다.
그 후 시대적 정세에 따라 부침은 있었지만 1946년 주안분교, 1951년 용현분교와 부평분교 등을 설치하였고, 현재는 중구 선린동 소재 부지에 교실 12개와 전산실, 음악실, 도서실, 유치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미스 유니버스대회에 대만 대표로 출전한 이수영(李秀英), 음악계의 유가창(劉家昌), 장경국 총통의 주치의 강홍정(姜洪霆), 영어학 교수 주수화(周樹華), 한중일보 사장 강수동(姜樹棟)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현재 학교의 정식 명칭은 '인천화교중산중소학교(仁川華僑中山中·小學校)'다. '중산'이 삼민주의를 주창하고 신해혁명을 성공시킨 손문(孫文)의 호이고 보면, 인천 화교들의 정신사적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제 인천 화교학교의 역사가 새로운 세기로 접어든 지도 10년이 되었다.
개교 110주년을 축하 드리는 동시에 그간 이 학교 출신들이 국내외 각계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음에도 정작 지역사회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활약은 미흡하지 않았나 돌아보게도 된다. 향후 내 고장을 가꿔가는 데 가일층 중지를 모았으면 한다.
/객원논설위원
2011년 05월 16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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