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박(薄)하다 할망정 어찌 없다 하겠는가?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1. 5.12)
원현린 칼럼 /
박(薄)하다 할망정 어찌 없다 하겠는가?
‘방몽’은 활쏘기를 ‘예’에게서 배웠다. 예의 기술을 모두 전수받았다. 방몽은 배우기를 마치자 생각했다. “천하에 오직 예만이 나보다 활 잘쏘는 사람”이라 생각한 끝에 예를 죽여 버렸다. 이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그렇게 된 것에는 예에게도 죄가 있는 것이다. - 是亦예有罪焉(시역예유죄언) - ”이라고 했다. 그러자 공명의(公明儀)가 말하기를 “마땅히 죄가 없는 듯합니다. - 宜若無罪焉(의약무죄언) - ”라고 했다. 이에 맹자는 “죄가 박(薄)하다고 할지언정 어찌 없다고 하겠는가? - 薄乎云爾(박호운이), 惡得無罪(오득무죄) -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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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가 되겠다는 명예욕에 사로잡혀 자기에게 궁도(弓道)를 가르쳐준 스승을 살해한 부도덕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제자가 스승을 배반했다면 제자에게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책임은 제자를 잘못 가르친 스승에게도 있는 것이다. 맹자는 이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스승 예는 방몽에게 잔재주에 지나지 않는 활쏘기 기술, 궁술(弓術)을 가르치기보다는 먼저 사람 됨됨이를 가르쳤어야 했다.
그저께가 4월 초파일, 석가탄신일이었다. 이 땅에 자비정신을 설파한 붓다는 인류 최고의 멘토, 영원한 우리의 참 스승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오는 15일이면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사제 간 모두가 다시 한 번 진정한 스승과 제자의 도리를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청소년들이 고민이 있어도 지금 자신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를 찾기보다는 다른 곳에서 상담 할 사람을 찾는다고 한다.
최근 인천시청소년상담지원센터가 인천지역 청소년들의 다양한 욕구에 대해 조사한 결과, 어려울 때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을 고르라는 질문에 가족친척이 46%로 가장 많았고 친구도 35.3%에 달했다. 하지만 학교 선생님은 3.7%로 낮게 나타났다. 조사결과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이것이 진리이고 인과관계론이다.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고 곧게 자라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오늘날의 청소년은 아프다. 학교에서의 학업성적에 대한 중압감, 가정문제, 이성문제, 학교내 폭력문제, 따돌림 등으로 제대로 학업에 정진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고충을 털어 놓는다.
제자가 스승을 폭행하고 스승이 제자를 훈육차원의 체벌을 넘는 정도의 폭행을 가하는 사건도 왕왕 일어난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서로가 믿지 못하는 불신의 관계가 된다. 불신 속에서는 참다운 교육이 이루질 수가 없다. 더 이상 사제 간 불미스러운 일들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자괴감을 느낀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오늘날 교사들은 “사도(師道)가 땅에 떨어졌는데 인도(人道)가 있겠느냐”며 한숨을 짓는다.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예로부터 밥상머리 교육을 강조해왔다. 가정이야말로 1차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다. 가정에서의 교육을 등한시하고 학교교육에만 의존한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비행만 나무라는 것도 잘못이다. 요즘의 교육제도를 보면 인성교육은 뒷전이다. 입시제도가 그렇게 만든 면도 없지는 않다.
이제부터라도 인성교육을 강화하여 사람의 도(道)를 우선적으로 가르치는 교육이 되어야 하겠다. 올해 스승의 날 표어가 ‘사랑한다 얘들아! 고마워요 선생님!’이라 한다. 정감이 넘쳐나는 문구다.
스승은 정신의 부모다. 스승은 제자를 사랑으로 대하고 제자는 스승을 존경하는 풍토가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2011년 05월 12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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