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비도서 자료(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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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1. 6. 8)
비도서 자료
/( 735 )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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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평론가 모 씨가 최근 모 일간지에 게재한 '커피왕국'이란 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환궁한 고종은 그녀의 서소문 정동 한옥(이화여고 자리)에 양옥건물을 지어주는데 이것이 최초의 서구식 호텔인 손탁호텔이다."
손탁호텔은 1902년에 건립한 것인데 반해 인천의 대불 호텔은 1885년 4월에 이미 영업 중이었다. 아펜젤러 목사는 선교보고서에 그같은 사정을 기록해 놓았다. 영어가 잘 통했고, 서양음식도 맛있었다고 했다.
미국의 한 시사주간지 '하퍼즈 위클리'는 1889년1월호에 '은둔의 왕국 조선'을 소개하면서 그 첫 장에 문제의 대불호텔을 묘사한 자세한 동판화를 게재하고 있어 호텔의 실재와 아펜젤러 목사의 숙박을 뒷받침하고 있다.
만일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로 대불호텔 신관이 1889년에 완공됐다면 하퍼즈 위클리 1월호에는 공사현장이 묘사되었어야 옳은데 그런 공사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문자로 된 기록을 그대로 다 믿을 수도 없다.
1933년에 발간된 '인천부사(仁川府史)'에 대불호텔의 객실수가 11개라고 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다. 퇴색한 중화루(中華樓) 간판이 달린 70년대말 필자가 직접 내부를 들어가 본 바로는 1층만 해도 방이 8개쯤 있었다.
대불호텔이 1889년에 완공됐다는 주장도 '인천부사'에 의한 것인데, 하퍼즈 위클리 지의 1889년1월의 보도 삽화와는 사뭇 달라 그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모르겠다. 이 지점에서 근대인천 연구에 신문, 삽화, 사진, 지도, 엽서, 포스터 등 비도서 자료의 수집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시 차원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부문이다.
/객원논설위원
2011년 06월 0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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