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대불호텔(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1. 6. 1)
대불호텔
/( 733 )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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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일을 꾀할 때는 실사구시(實事求是)로써 해야 한다.' 옛 어른들의 가르침이다. 실천이 따르지 아니하는 이론이나 헛된 논의를 접고, 정확한 고증을 바탕으로 과학적, 객관적으로 일을 꾀하자는 말씀이다.
이를 새삼스럽게 든 것은 최근 지역사회 학계, 언론계의 근대 역사문화 관련 유적에 대한 접근에 이의가 있어서이다. 그 해석이 자의적인 이현령비현령이요, 본질을 벗어난 예가 한둘이 아닌 듯 보였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온 '영종진 복원' 의견부터가 그렇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 역사유적을 '복원'하자면 근거가 되는 구체적 사료가 있어야 할 터인데 불행하게도 몇몇 사서의 기술과 '진'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가 있을 뿐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구체적 자료는 필자가 연전에 일본서 찾은 '영종진'의 성벽이 그려진 '운양호 사건 판화'가 유일하다. 그것도 극히 일부분의 성벽만 묘사된 것인데, 무엇으로 '진'을 복원하자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옛 대불호텔 자리의 학술적 조사도 비슷한 예에 속한다. 청요릿집 중화루의 전신인 '대불호텔'이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 자리였다는 기술부터가 오류다. 1885년 아펜젤러 목사가 투숙한 호텔은 그곳이 아니었다.
연전에 필자가 영국서 구입해 소개한 '하퍼즈 위클리(1889년)' 지(紙)의 '삽화'에 의하면, 최초의 호텔은 바로 옆의 목조 2층이 명백한데도 1889년에 건축했다는 벽돌건물을 '최초'라고 한다면 그 또한 심각한 '역사왜곡'인 것이다.
현실적인 정치적·경제적·학술적 이해와 필요에 따라서 '역사'를 해석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객원논설위원
2011년 06월 0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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