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비리형들이 어찌 그리 당당한가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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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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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채훈의 중국산책 /
비리형들이 어찌 그리 당당한가
청대의 문예비평가로 명성을 떨친 금성탄(金聖嘆)은 수호지같은 대중소설이나 서상기(西廂記)같은 희곡을 사마천이 지은 불후의 역사서 사기(史記)나 두보의 시(詩)와 같은 수준의 저작이라고 높이 평가하여 교양있는 지식인으로서 지나친 일을 했다고 할 만큼 속된 가치나 정통(正統)이라는 따위를 싫어했다. 이것이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심히 위험스런데다가 그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으므로 대표적인 요주의 인물이었다. 결국 그는 학생들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자 배후 조종자로 지목되어 체포되고 사형을 받게 되었다. ‘가장 문화적 황제’라고 추앙받는 강희제 때의 일이다. 금성탄은 체포된 이후 어떤 변명이나 형량을 줄이기 위한 볼썽사나운 짓을 전혀 하지 않았다. 마침내 처형장으로 갔다. 참수되기 직전, 마지막 술 한 잔을 받아 천천히 마시면서 “참수는 흔한 일이나 음주는 쾌사(快事). 죽기 전에 술잔을 기울이니 이 얼마나 통쾌한 일이냐” 하고는 곁에서 울고 있는 아들에게 위로하듯이 덧붙였다.
“아들아, 슬퍼하지 말아라. 마지막으로 너에게 대구(對句)를 주마. 앞 구절은 연자심중고(蓮子心中苦 : 연꽃 속의 알맹이는 쓰다)이다. 뒷 구절을 지어 보거라.” 아들은 더욱 서럽게 울었다. 부친의 죄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서러웠는지도 모른다. 배후 조종자라고 하지만 증거는 조작되었고, 설령 죄가 있다 해도 권세가 있었다면 귀양 정도로 끝날 일이었던 것이다. 금성탄은 한동안 아들을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들아, 세상에 슬픈 일이 어디 이것뿐이겠느냐. 내가 너 대신에 말해 주마. 뒷 구절은 이아복내산(梨兒腹內酸 : 배의 알맹이는 시다)이다.”
이 대구에는 숨은 의미가 있었다. 앞 구절의 ‘연(蓮)’은 ‘연(憐)’과 음이 비슷하다. 따라서 서럽게 울고 있는 아들이 가엾다는 뜻이고, 뒷 구절의 ‘이(梨)’는 ‘이(離)’와 같은 음으로 부자가 이별하는데 마음이 쓰리다는 심정을 내비친 것이다.
채형자의 「충명만록(蟲鳴慢錄)」 권2에서 이 고사를 인용한 다음에 “의지가 굳건하여 어려움에 처해서도 선비다운 기개를 잃지 않았다”며 금성탄을 칭송하고 있다. 더욱이 그는 최후 진술로 “가족에게 보내는 한 통의 서찰이 있는데 전해줄 수 있겠는가?” 하고 형 집행자에게 동의를 구했다. 마침내 참수형이 집행되고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는 사형감독관에게 보내졌다. ‘혹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황제를 원망하는 글귀가 쓰여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한 감독관이 봉투를 열고 그 내용을 꺼내보니 별것 아닌 구절이 있을 뿐이었다.
― 잘 보거라. 소금에 절인 야채와 콩을 함께 씹으면 진짜 호두의 깊은 맛이 난다. 이 방법을 전하고 보니 더 이상 내게 미련이 남지 않는구나.
감독관이 맥 풀린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금선생은 죽으면서도 우리 관리들을 마음대로 조롱하는구나.”
봉건시대의 죄목과 형량은 물론 집행 여부까지 오로지 통치자의 입맛에 따라 결정되었다. 통치자의 이익을 지키며 백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권세가는 파직이라든가 귀양이 처벌인 반면, 일반 백성은 야만스런 혹형(酷刑)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권력이나 돈이 있으면 무죄가 되고, 그것이 없으면 유죄가 되는 셈이었다. 유죄가 되어 형장으로 끌려 나오면 ‘한 잔의 술과 약간의 식사가 제공되고 가족들과 이별하는 시간을 주는 것’이 최대한의 배려였다. 형이 집행되기 직전, 어떤 자는 얼굴이 창백해지고, 어떤 자는 절망감에 고개를 푹 숙이고, 어떤 자는 똥오줌을 싸서 오물투성이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확고한 신념이나 인생관을 지닌, 때로 권력자에게 오만불손(?)한 죄인들이 있어 태연자약하거나 조용히 하늘을 우러르며 운명을 받아들이거나 짧은 한마디를 비수처럼 던져 형집행 관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거나 구경하는 백성들로 하여금 존경의 마음을 품게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수사기관에 불려갈 때 애용하는 휠체어, 그에 못지않게 마치 죄가 없다는 듯이 얼굴을 바짝 쳐들고 옛 선비의 기개를 흉내라도 낼 듯이 출두하는 비리투성이 인물들을 TV 화면에서 보고 있노라면 울컥하는 게 나만의 현상일까? 쓴 침이 고이는 일이 너무 다반사인 오늘이다.
2011년 06월 03일 (금)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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