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자살과 행복지수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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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 6.16)
원현린 칼럼/
자살과 행복지수
자살에 대하여 본란에 글을 쓴 기억만도 네댓 번은 되는 것 같다. 글에는 쓰고 싶은 글과 쓰고 싶지 않은 글이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유쾌하지 못한 제하(題下)의 글은 후자와 같이 쓰고 싶지 않은 글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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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국의 장관을 지내고 대학 총장자리에 있던 한 인사의 자살 소식이 또 한 번 우리 마음을 허탈하게 하고 있다.
사회 저명인사(著名人士)라 불리는 숱한 사람들이 자살을 택해 생을 마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전히 ‘자살률 세계1위’라든가 ‘자살 공화국’이라는 반갑지 않은 오명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자살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필자도 본란을 통해 누차 어떠한 이유에서든 자살만은 안 된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또 한 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경제부처 고위직 간부를 거쳐 장관까지 지냈고 지성의 전당, 신성한 상아탑 등등으로 불리는 대학교 총장자리에 있던 인사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세인의 기억에 남는 자살 사건은 한 전직 대통령을 비롯하여 장관, 자치단체장, 유명 연예인 등에 이르기까지 신분과 계층을 가리지 않고 전 분야에 걸쳐 일어났다. 이밖에도 청소년과 군인, 대학생 등 젊은이들의 자살 소식도 끊이질 않고 있다.
한 법률가는 자살자가 이처럼 계층을 가리지 않고 이어지는 것에 대해 “자살은 일종의 질병”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그는 사인 불명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경찰이 사체를 해부 하듯이 자살자에 대해서도 심리적 정신적 해부를 할 필요가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 흔히들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왜 죽느냐?” “왜 자살을 하느냐?”고들 하는데 이는 아픈 사람한테 “왜 아프냐?”라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자살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을 두고 ‘베르테르 효과’라고들 한다. 이제 이 말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되다시피 하여 더 이상의 설명은 여기에서는 약하기로 한다.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 언제나 자살이 사회 문제화 될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지만 행복은 물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학자들은 강조하곤 한다. 물질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라면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에서는 자살이 없어야 하고 빈곤 국가에서만 있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한 마디로 지금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언젠가 한번 언급한 적이 있는 히말라야 산맥 기슭에 작은 나라지만 행복한 나라 부탄 왕국이 있다. 이 나라는 국내총생산 GDP(Gross Domestic Product) 대신, 국가총행복 GNH(Gross National Happiness)지수를 사용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 나라 국민들은 묻는다. “당신네 나라 국민들은 행복합니까?”, “당신네 나라 행복지수는 얼마입니까?”라고.
이 물음에 대해 우리는 구체적 수치는 차치하고 우리의 행복지수는 ‘높다’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경우 한 해 자살자가 1만명이 넘어선지는 이미 오래다. 가히 이 같은 숫자는 역대 어느 대전(大戰)의 희생자 수 보다 많은 수다.
어떻게 이 세상에 온 인생인데 자살이란 방법으로 그렇게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는가. 자살자 스스로의 인생을 망친 것은 그렇다 치자. 우선 떠오르는 것이 자살자와 가족관계에 있는 피붙이들이다. 그들은 어떻게 살라하고, 또 그와 동고동락했던 친지들과 이웃들은 그 충격을 어떻게 감당하라하고.
국가가 자살 예방을 위하여 여러가지 방지책을 마련하고 있으나 여전히 줄지 않고 있는 자살이다. 백약이 무효하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자살을 권하진 않는다. 자살을 앞둔 사람은 사전 행동에서 평소와 다른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한 법률가의 진단대로 자살은 정신적 질병 현상인지 모른다. 자살예방을 위해 주위 사람들의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요청된다.
2011년 06월 16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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