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내 이럴 줄 알았다'가 언제 끝날까(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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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 7.21)
나채훈의 중국산책 /
'내 이럴 줄 알았다'가 언제 끝날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개각이나 고위공직자 인사가 있을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위장 전입, 병역 면제, 부동산 투기 등 흠결에 대해 청와대는 ‘일만 잘하면 된다’고 앵무새처럼 되뇌였다. 한마디로 그들이 명신(名臣)의 자질이 충분하다는 것인데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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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신을 많이 거느려 중국 사상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룩한 당태종의 정관(貞觀)시대를 살펴보면 하나의 대답을 얻을 수 있다. 인물됨됨이를 잘 파악한다는 왕규(王珪)가 당태종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항상 폐하에 대해 직언을 아끼지 않고 자신이 섬기는 군주가 최상의 지도자에 못 미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점에서 저는 위징(魏徵)에 못 미칩니다. 또 충실한 자세로 나라에 봉사하고 옳은 일은 반드시 실행에 옮기는 점에서 방현령(房玄齡)에게 못 미칩니다. 문무에 풍부한 재능을 갖추고 전쟁에 나가면 승리를 가져오고 돌아와서는 재상의 임무를 훌륭히 해내는 점에서 이정(李靖)에 못 미칩니다. 폐하에게 아뢰는 바가 선명하고 아랫사람의 말을 윗사람에게 전달하거나 윗사람의 분부를 아랫사람에게 전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점에서 온언박(溫彦博)에게 못 미칩니다. 바쁠 때에 어려운 일을 무난히 처리하고 맡은 바에는 꼭 효과를 내는 능력에서 대주(戴?)에게 못 미칩니다. 다만 저는 나쁜 일을 없애고 좋은 일을 올리는 면에서 앞서 말한 그들보다 조금 나을 뿐입니다.”
왕규가 거론한 인물들이 바로 정관의 시대를 이끈 명신들인데 이외에도 손꼽아 줄만한 인재들이 무수히 많았다. 당태종은 이들 덕분에 중국 4천년 사상 최고의 명군(名君)이 되었다. 이 가운데 위징의 경우 하나만 예로 들어 보겠다. 현명하고 훌륭한 군주와 어리석고 한심한 군주의 차이가 무엇 때문이냐고 당태종이 물었을 때 위징이 대답한 내용이다.
- 현명하고 훌륭한 군주는 겸청(兼聽 : 많은 사람이 말하는 바를 귀담아 듣는 것)하기 때문에 받는 찬사이고 어리석고 한심한 군주는 편신(偏信 : 한쪽 편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을 듣는 것)하기에 그리 되는 것이지요. 수양제는 우세기라는 자의 말만 편신하여 도적이 성을 공격하고 촌리(村里)를 휘저어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주가 겸청하여 신하들의 말을 두루 들으시면 고관들이 악행을 은폐시킬 수 없을 것이며 백성들의 사는 형편도 반드시 아시게 되는 것이지요.
당태종은 위징을 칭찬하며 자신도 겸청하겠다고 했다. 위징은 원래 당태종 이세민과는 적대관계에 있던 사람이었다. 이세민이 황태자로 있던 형 이건성을 죽이고 그 일족마저 모조리 해치운 뒤에 이건성을 모시던 위징을 붙잡아 놓고 “그대는 어찌하여 우리 형제를 이간질하였는가?”라며 질책했을 때였다. 위징은 담담한 표정으로 “황태자(건성)께서 일찍이 제가 말씀드린 바를 실행에 옮기셨다면 오늘과 같은 불행은 당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곁에 있던 많은 이들이 이 당돌한 대답에 어찌할 줄 모르고 조마조마하는데 이세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도 내게 소신있는 직언을 해달라”며 측근으로 기용했었다.
명군(名君)이니 명신(名臣)이니 하는 호칭이 거저 생긴 것도 아니려니와 그 관계를 들여다보면 최소한의 인격적 진정성과 시대에 대한 소임을 가슴 깊이 아로새긴 도량과 의연한 기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덕목이나 국정에 대한 목표의식, 그리고 가치관이 뚜렷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위장 전입, 병역 면제, 부동산 투기는 필수과목이요, 고소영이니 강부자니 하는 좁디 좁은 인재풀에서 고위공직자를 인사하면서 ‘일만 잘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는데 결과는 어떠한가. 정책 실패로 중산층이 무너졌고, 그들이 지켜준 것은 친대기업으로 극소수 기득권층, 특정 지역의 인맥, 집권당의 기회주의적 처신 이외에 무엇이 있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그렇게 발탁된 MB맨들이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하여 도덕성을 잃지 않았는지, 균등한 기회의 보장이란 참다운 가치를 훼손하지 않았는지, 공정사회를 외치기 전에 그들 스스로 편법을 자행하지 않았는지, 경제 정의를 부르짖는 노동자를 짓밟지 않았는지 재삼 돌아볼 일이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말만 되뇌일 것인지…….
나채훈(중국역사문화연구소장)
2011년 07월 22일 (금)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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