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조보'와 '안자의 마부'에게서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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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 7. 8)
나채훈의 중국산책 /
'조보'와 '안자의 마부'에게서 느낄 바
한나라당의 새 대표에 홍준표 의원이 선출되었다. 홍 대표는 그 동안 서민을 자처하고 ‘변화’와 ‘쇄신’을 내걸면서 구태를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하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이와 어긋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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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모처럼 양극화 해법으로 주목받을 만한 이익공유제를 들고 나왔을 때 “세계에 유례가 없는 급진좌파적 주장”이라고 맹렬히 비난했었다. 그가 자처하는 ‘서민’이라는 말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이유다. 그런 홍 대표가 전당대회 기간에 당당한 대표와 계파 초월, 사회양극화 해소, 부패 척결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한마디로 청와대에 대해 할 말은 하고, 공천에서도 상향식으로 하고, 친서민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것인데 과연 당당하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
일찍이 사심(私心)없이 최고권력자에게 할 말은 다하고, 뚝심있는 신념으로 일관한 송대(宋代)의 조보(趙普)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가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 인물을 천거했는데 태조 조광윤이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였다. 조보가 재차 상신하자 태조는 “짐이 무슨 일이 있어도 받아주지 않는다면 어쩌겠느냐? 별 수 없지 않느냐?”면서 거부했으나 조보는 조금도 두려운 빛없이 “형벌과 포상은 폐하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천하의 것(刑賞天下之刑賞)입니다. 어찌 폐하의 희로애락과 기분에 따라 멋대로 하시려 합니까”라며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좋은 약은 입에 쓴 법. 몹시 비위가 상한 태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전 쪽으로 걸어갔다. 조보는 당연한 듯이 따라갔다. 결국 태조는 내전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이 경계를 범할 수 없었던 조보는 내전 문 앞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이튿날에도 조보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고 마침내 태조는 손을 들고 그 신하를 주요 직책에 임명했다.
조보가 내건 벼슬하는 자의 첫째 조건은 ‘남의 힘을 업고 뽐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즉 ‘안자(晏子)의 마부(馬夫)가 되지 말라’는 의미였다. 안자는 춘추시대 제(齊)나라 명재상 안영을 말한다. 안영은 재상이 되었어도 예전의 가난한 시절을 잊지 않고 청렴한 생활을 하면서 임금이 자기 딸인 공주를 아내로 삼으라고 하자 ‘제 아내는 비록 늙고 볼품이 없으나 저와 고락을 함께 해온 조강지처입니다. 아무리 임금의 명령이라 해도 아내를 버릴 수 없습니다’고 완강히 버텨 백성들이 존경을 바쳤고 사대부들도 귀감으로 삼았다. 그런데 안영의 마부는 마치 자기가 출세라도 한듯 착각하여 뽐내는 기색으로 마차에 접근하는 무리에게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하루는 그 광경을 목도한 마부의 아내가 그날 저녁 귀가한 남편에게 나직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과 더 이상 살 수 없어요. 헤어집시다.”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들어보세요. 천하가 존경하는 안재상님께서도 표정을 보면 항상 온화하시고 사람을 대할 때 겸손하기가 이를 데 없는데 당신은 마부 주제에 으스대고 큰소리치지 않습니까. 그런 남편과 살아봐야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 그러니 여기서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런 맹처(猛妻)를 아내로 맞이했다가는 언제 쫓겨날지 몰라 전전긍긍해야 할 테지만 마부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아내 앞에 ‘앞으로 안재상님보다 더 온화한 표정으로 겸손하게 행동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마부의 태도는 크게 달라졌다. 너무나 사람이 달라진 것이다. 안영이 의아하게 여겨 이유를 물어보니 마부는 아내와 있었던 일을 사실 그대로 설명했다.
- 충고한 아내도 그렇지만 순순히 받아들인 그대의 자세가 진정 훌륭하다.
안영은 그 마부를 대부(大夫/고위 관료)로 발탁했다.
홍 대표는 간혹 조보의 역할을 해야 할 때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안영의 마부에게서 많은 걸 느꼈으면 한다. 자신이 ‘서민’을 자처하기 전에 오늘날 신용등급 8등급 이하의 서민 200만 명이 44%의 살인적 고금리까지 각오하면서 대부업체를 기웃거려야 하고, 전국 176만여 신용불량자들은 또 어떠한가. 가난한 자들의 불만에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걸핏하면 좌파 포퓰리즘 운운하면서 서민들의 기대와 희망을 밟는 정치인들 탓도 크다. 이제 홍 대표가 ‘말’이 아닌 ‘정책’으로 서민을 껴안는 첫 한나라당 대표가 되기를 바란다.
나채훈(중국역사문화연구소장)
2011년 07월 08일 (금)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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