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 韓中日 삼국지/‘삼국지’ 인용하면서 친근감을 다졌지만…(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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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20. 1. 3)
‘삼국지’ 인용하면서 친근감을 다졌지만…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역사소설가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열린 한중일 삼국 정상회담에서 한시(漢詩)와 고전(古典)을 인용하며 같은 한자문화권이라는 친근감을 나누고 함축적 메시지를 서로 교환했다고 한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리커창 총리에게 한중 관계의 봄날을 만들자며 당나라 시인 두보의 ‘춘야희우(春夜喜雨)’ 구절을 인용했고, 청두가 삼국시대 촉한의 수도였음을 언급하며 양국 협력의 뜻을 비쳤다.
문 대통령은 "사람을 먼저 생각했던 유비의 정신처럼 3국 협력도 국민의 삶을 이롭게 하는 덕치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으며 리커창 총리도 "삼국연의에서 많이 언급되는 청두에서 회담을 여는 것은 서로 알고 통하는 점이 많다는 걸 의미한다"고 화답했으며, 아베 총리도 "청두는 일본에서 삼국지의 촉나라 중심지로 유명하다"면서 "협력의 전제는 3국이 서로 윈윈윈 관계를 만드는 데 있다"는 의미를 내비쳤다.
고전 「예기(禮記)」는 "시를 통해 자신의 뜻을 말한다(詩言其志也)"고 했고, 「논어(論語)」는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不學詩無以言)"라고 적었다. 특히 공자는 "시 300편을 줄줄 외면서 외교에 능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시구가 외교적인 수사로 활용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후 동양사회에서는 외교 무대에 시나 고전을 인용해 주고받는 전통이 만들어졌다.
조선시대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조정에서는 시인이나 문장가를 압록강 국경까지 보내 영접했는데 거기서 한양 도성에 이르는 동안 양국 사신들은 한시로 대화를 나누면서 우의를 다지며 상대의 속내를 탐색했다.
1450년부터 180여 년간 조선과 명나라 사신들이 주고받은 한시들이 「황화집(皇華集)」으로 간행돼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는 게 좋은 예다.
하지만 이렇듯 격조 있는 외교라고 해서 결과를 낙관하긴 어렵다. 2014년 방한한 시진핑 주석은 "순풍에 돛을 달자(風好正揚帆)"는 시구로 인사를 건네며 한중 관계를 한층 더 발전시키자면서 "누대에 한층 더 오르자(更上一層樓)"라는 한시 ‘등관작루(登觀雀樓)’의 시구를 인용했었으나 그 후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이 어떠했는지 재언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3불 합의’를 하여 겨우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치학자 이언 브레머는 강대국 옆에 위치한 탓에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국가를 ‘그림자 국가(shadow state)’로 규정하면서 대표적으로 우크라이나와 멕시코를 꼽았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그림자 국가고 멕시코는 미국의 그림자 국가라는 것이다. 요즘 들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고 지적하는 이가 많으나 한국이 중국의 그림자 국가가 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꽤 있다. 「아시아 세기의 종언」을 펴낸 마이클 오슬린 후버연구소 연구원 등을 비롯해 미국 내 아시아 전문가들은 2020년대 후반이면 한국이 중국의 영향권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예측을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로 인해 미국이 동북아에서 퇴조가 뚜렷해지는 상황에서 이런 경량이 더욱 가속화되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한중일 정상회담이나 그 직전에 열린 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회담에서 사드 보복이나 홍콩·신장위구르 문제에 대한 우리 태도와 시 주석의 중국몽 리더십에 경의를 표한 것이 외교적 전략 화법을 넘어 지나치게 친중적이라는 비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2년여 전 방중 당시 문 대통령은 "높은 산봉우리가 주변의 많은 산봉우리와 어울리면서 더 높아진다"며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로 추켜세우고 한국을 주변 봉우리로 낮춘 바 있다. 한반도 평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면서 친중 경향을 강화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문제는 그럴수록 베이징 당국은 한국을 더 압박했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문 대통령의 이런 외교정책에 대해 실패를 인정하고 한미 동맹에 더욱 비중을 둬야 한다고 한다. 이것 역시 그리 현명한 책략 같지는 않다. 미국이 멕시코의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땅을 빼앗을 때 멕시코인들이 "하느님은 너무 멀리 있는데 미국은 너무 가까이 있다"고 탄식했다지 않은가.
캐나다가 수도를 미국 국경에 인접한 토론토 대신 오타와로 정한 것은 호시탐탐 노리는 미국을 멀리하기 위해서라는 건 잘 알려진 바다. 강대국의 탐욕은 동서고금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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