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후흑(厚黑)의 달인을 기다린다(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1. 8. 5)
나채훈의 중국산책 /
후흑(厚黑)의 달인을 기다린다
세상이 꽤나 소란하다. 날씨마저도 그에 편승해서 난리에 가깝다. 귀중한 생명들이 도처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변하고, 멀쩡하던 산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도심 한복판에 마치 호수처럼 물웅덩이가 생겨난다. 고공 크레인 위에서 정리해고에 항의하는 절규는 6개월이 훌쩍 넘었는데도 계속되고 있다. 얼마 후에는 대한민국 심장부에서 무상급식을 주민투표로 결정하는 갈등이 예고되고 있다.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는 많은 이들의 심정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을 터. 그런데 아직도 ‘보이지 않는 곳은 나 몰라라 하고 보이는 곳에만 치장하다 보니 생겨난 많은 일’들에 대해 회피성 태도가 계속된다. 그저 무사위복(無事爲福), 일이 없는 것으로 복을 삼고 적당히 넘기려는 듯이 보인다. 정치적 이해타산에 따라 거친 비판도 물론 뒤따르지만 어차피 품격은 사라진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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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댓글을 연계한 ‘소셜댓글’을 들여다 보면 이런 모습들이 증오의 감정이 되어 여과없이 노출되고 있다. 아연해진다. 누구든 사회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조금만 달라도 마구 언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테러가 아니고 무엇인가? 자기 주장을 펼 때 최소한의 논리와 품격을 갖추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쯤은 다 알만한 일일 터인데도 아예 담 쌓기로 작정한 듯하다. 분노는 필요하다. 정당한 분노는 일깨워줘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분노의 대상과 방향에 대해 곰곰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일찍이 사마천은 “발길을 한번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서 밟고, 말 한 마디를 하는 데도 적절한 때를 당해서만 말하고,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도 일부러 피해서 걷고, 공정한 일이 아니면 분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재앙을 만나는 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나는 몹시 생각이 헷갈린다. 소위 하늘의 도리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所謂天道 是耶非耶)”하고 의문을 제기했었다.
공자는 아예 세상이 갈 데까지 가서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지경이 되어야 진정 의로운 인물이 돋보이게 된다고 탄식하면서 “날씨가 매섭게 추워진 연후에야 비로소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더디 조락(凋落)한다는 걸 알게 된다(歲寒然後 之松栢之後凋也)”고 했었다. 지금 우리는 몹시 헷갈린다. 이 지경이 되도록 무얼 했는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공자의 논법대로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지경이 되었으니 바야흐로 진정한 주장, 진정한 인물, 진정한 시대정신이 분출하고 내일을 기약하는 앎이 나타날 것인지….
여기서 나는 역설적으로 진정한 후흑(厚黑)의 달인이 출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청말(淸末)의 반유사상가(反儒思想家) 이종오(李宗吾)는 이런 말을 남겼다.
- 하늘이 인간을 창조하여 각자의 얼굴을 만들 때 그 얼굴 속은 겉에서 볼 수 없도록 감추었다. 또 하늘이 사람에게 마음이란 것을 주었을 때도 그 컴컴한 복심(腹心)을 표면에서는 결코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얼굴이 두껍고 속이 시커먼 인물들은 수련을 쌓음에 따라 1단계에서 2단계로, 2단계에서 3단계로 옮아간다. 이리하여 수련의 경지가 최고조에 달하면 ‘그 한량없고 태연한 외모 속에 있는 시커먼 복심은 철저히 가려져서 절대로 보이지 않고 따라서 상대는 무엇인가에 현혹되어 결국 그 손아귀에 말려들고 만다.’ 고금의 영웅호걸들이나 왕후장상 가운데 후흑에 의존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애써 이를 감추려 했다. 달인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1단계 후흑의 경지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어설픈 리더십 때문에 웃고 울고 있다면 지나친 말일까? 달인은 복심양모(腹心良謀)라 했다. 시커먼 뱃속에 뛰어난 꾀를 말한다. 요즘으로 치면 멋진 정책을 가져야 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대선(大選)으로 가는 징검다리나 만들자고 지방선거에 나서는 인물을 뽑거나, 잘못된 정책 탓에 세상이 온통 아수라장이 돼도 반성은커녕 지나친 독선이 시중의 서생 눈에도 뻔히 보일 정도로 한심해서 하는 말이다. 입으로는 국제경쟁력, 품격 있는 사회, 비전 있는 내일을 외치면서 실제 행동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정신 나간 지도자들을 어찌 해야 좋을 것인지. 답답해서 해보는 궁상이다.
나채훈(중국역사문화연구소장)
2011년 08월 05일 (금)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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