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재론'대불호텔'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1.)
재론'대불호텔'
/( 757 )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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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역사회 문화계 일각에서 불거지고 있는 '대불호텔 복원론'은 전제가 틀린 논의 전개라는 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전 '중화루' 자리 벽돌집 건물을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이라고 한 것이 명백한 오류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은 현재 일컬어지고 있는 '중화루' 자리가 아니라, 바로 그 옆에 있던 2층 목조건물이었다. 정확한 기록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아펜젤러 목사도 그의 '선교보고서'에 이 같은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대불호텔'의 건립연도를 '인천부사'를 쫓아 1888년이라고 하나, 아펜젤러는 일인이 경영하는 인천의 '다이브츠(大佛)호텔'에 묵었으며, 종업원들이 영어를 잘하였고, 서양식 음식도 맛있었다고 전한 바 있다.
'대불호텔'의 건립연도를 1888년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에서 보면 아펜젤러 목사는 있지도 않던 '유령의 집'에서 부인 엘라 여사와 함께 숙박했던 셈이 된다. 미국의 주간지 '하퍼즈 위클리'도 아펜젤라의 말을 뒷받침하고 있다.
1889년 1월호 '하퍼즈 위클리'에는 인천 제물포의 중심가가 소개돼 있는데, '다이브츠 호텔'이라는 영어 간판을 내건 2층 목조건물인 호텔을 도판의 중심 소재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이라며 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는 '중화루' 자리는 '최초의 호텔'이 아니다. 건립연도는 1888년이 아니라 '1885년 이전'이다. 드러난 지하실 등 유구와 사진엽서 몇장을 토대로 건물을 복원하자는 것은 이유가 불분명한 주장이다. 드러난 여러 사료를 무시한 자의적 역사해석은 수정돼야 한다.
/객원논설위원
2011년 08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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