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속수지례(束脩之禮)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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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 9. 1)
원현린 칼럼 /
속수지례(束脩之禮)
공자는 일찍이 “말린 고기 한 묶음 이상을 가지고 와서 내게 예물로 바치는 사람이 있다면, 내 일찍이 가르쳐 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라고 했다. - 自行束脩以上(자행속수이상), 吾未嘗無誨焉(오미상무회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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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束脩(속수)’는 묶을 속(束)에 포 수(脩)자다. 열 개의 포(脯)를 묶은 것을 보내는 예물을 의미한다. 예전에 제자가 스승에게 가르침을 청할 때 드리는 정성이 담긴 작은 예물의 뜻을 담고 있다. 이로 미루어보아 공자는 일종의 수업료로 육포도 받았던 것이다. 공자는 배움을 구하는 자 정성을 다해 예물을 차려 가져오면 받아주었다는 얘기다. 수업료의 많고 적음은 묻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공자는 문하(門下)에 제자가 3천명에 달했다 한다. 이들이 단순히 등하교를 하는 학생이 아니라 침식을 함께하는 학도들이었다니 실로 엄청난 숫자다. 오늘 날로 치면 한 기숙사에서 숙식을 함께하며 공부하는 웬만한 대학의 규모다.
전국의 대학들이 여름 방학을 끝내고 일제히 2학기 개강을 했다. 하지만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 학생들은 등록을 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는 휴학을 할 수밖에 없다.
대학 등록금이 비싸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대학 등록시기마다 한숨짓는 소리가 들린다. 엄청난 등록금에 학부모들의 허리가 휘었다. 대학생 가정마다 가계에 주름이 늘었다.
해마다 인상을 거듭하던 대학 등록금이 이제는 1천만 원을 웃돌고 있는 대학까지 생겨났다. 등록금 액수만 이렇지 여기에 책값, 교통비, 의식주 비용까지 합하면 계산을 넘어선다. 농촌에서 서울이나 대도시로 유학중인 대학생의 경우는 소 팔고 논팔아도 어림없다. 말로 형언하기조차 힘들다고 한다.
대학생 4명 가운데 1명꼴은 학자금 대출로 학비를 마련하고 있다한다. 이러다 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그동안 대출받아 공부한 학비부채에 치어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보면 분명 우리의 대학 교육은 잘못되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절반 정도는 그 해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어 졸업생 자신과 가정은 말할 것도 없고 종국적으로는 국가적 손실이 되고 있다. 청운의 꿈을 품었을 젊은이들이다. 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후 등록금이 없어 학업을 계속할 수 없다면, 그래서 꿈을 접어야 한다면 얼마나 애석한 일이겠는가.
주희(朱熹)는 그의 권학문(勸學文))에서 “오늘 배우지 아니하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 것이며, 올해에 배우지 아니하고서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물위금일불학이유내일),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물위금년불학이유내년)-”라고 경세(警世)했다.
하지만 오늘 일하지 않고 어떻게 내일 배울 수 있으며, 올해에 등록금을 마련하지 하지 않고 어떻게 내년에 수강신청을 할 수 있을까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 한창 공부해야할 대학생들의 현실이 되어버렸다. 공부할 돈이 없어 젊은이들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대학에서 무슨 진리를 탐구하고 학문이 발전하고 나라의 미래가 있겠는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하는 헌법 전문이 공허하게 들려온다.
등록금이 없는 학생에게는 대학은 꿈속에 꿈일 수밖에 없다. 자녀는 부모를 탓하고 부모는 자녀에게 미안한 마음 뿐일게다.
형편이 닿는 대로 약간의 예물을 준비해 대학에 속수지례(束脩之禮)를 갖추어 찾아가면 안 될 까? 우리도 이제 국민소득 2만~3만 달러를 구가하고 있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고 자화자찬하는 나라인데… 누구든 ‘속수(束脩)’정도면 대학등록이 가능해야 하는 것 아닌가.
2011년 09월 01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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