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송도 UN 회의(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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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 8.18)
원현린 칼럼 /
송도 UN 회의
빨간 날짜가 가장 많았던 10월 달력을 들여다보고 학교가지 않는 날을 세어 보며 마냥 즐거워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공휴일에서 사라졌지만 그 중에는 10월 24일 ‘유엔 데이’도 빨간 날이었다. 필자가 초등학생이었던 당시에는 유엔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노는 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저 좋아했었다. 단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어린 마음에서였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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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유엔에 가입하기 3년 전인 1988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반도에서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드는 날, 세계에는 확실한 평화가 올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91년 9월17일 대한민국은 북한과 함께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다. 우리가 유엔에 처음 가입신청을 했던 때로부터 42년 8개월 만이었다.
노 대통령은 유엔회원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1991년 9월 24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을 제시, 실천해 나갈 것을 온 세계만방에 천명했다.
첫째, 남북한은 불안한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남북한은 군사적 신뢰의 구축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군비 감축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셋째, 남북한은 사람과 물자, 정보의 자유로운 교류의 길을 열어 단절의 시대를 종식시켜야 한다.
지금 한반도는 냉전이 흐르는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일 뿐 아니라 인접국인 일본과 독도영토 문제, 동해의 일본해 표기 문제로 국제분쟁이 재연될 조짐이 보이고 있는 지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국제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은 동해표기를 ‘일본해’가 공식표기라고 발표하는 등 이상 기류가 흐르고 있다.
정부에서는 ‘조용한 외교’니 뭐니 해가면서 여전히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는 우리 외교 당국이다. 얼마 전 영국 교과서 ‘대한민국’ 편에 “한국은 덜 발전된 나라로 국제원조를 받고 있는 나라”라고 표기돼있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게다가 미국의 한 도서관에는 한국을 소개한 그림책자에 ‘갓을 쓴 노인’이 나오는 나라로 그려져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이른바 조용한 외교의 성과는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 것인지 외교 당국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사안일한 자세로는 안 된다. 지금은 구한말 서구 열강이 조선에 침략을 감행하던 시기와 국제 정세가 비슷하다고 전문가들은 분석들을 한다. 당시 한 세기 전에는 글자그대로 서세동점(西勢東漸), 서세동침(西勢東侵)시기로 불리던 때다. 땅과 나라이름까지 몽땅 빼앗기고 잃었버렸던 시기다. 힘을 길러야 하겠다. 지구상에는 역사상 수많은 민족이 국가를 건설했으나 힘이 없는 민족은 역사의 무대에서 가차 없이 사라져 갔다.
한국이 유엔에 가입한지 5년만인 1996년 안보리 이사국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상임이사국이 아니 되고서는 군사적 문제가 야기됐을 시에는 이 또한 별무한 것이 유엔이다. 지난 번 천암함 폭침 당시 ‘유엔 안보리와 우리의 자세’라는 제하에 필자는 유엔과 안보리에 관해 본란에서 논한 바 있다.
지난 주 인천 송도에서는 세계 각국의 대학생과 청소년들이 참석한 가운데 ‘2011 글로벌 모의 유엔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한국이 낳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참석했다.
비록 모의 유엔 회의이지만 5일간의 공식일정을 마치고 14일 폐막된 유엔회의가 개최된 곳이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현 인천신문사 사옥에서 그리 멀지 않게 바라다 보이는 송도국제도시였다.
인천 송도 유엔 회의를 지켜본 필자는 누구보다도 큰 감회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까닭은 대한민국이 유엔에 가입하던 해인 20년 전, 필자가 청와대 출입자단 일원으로서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 총회에 다녀 온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2011년 08월 18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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