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송도유원지(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1. 9.21)
송도유원지
/( 778 ) 조우성의 미추홀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 |
||
송도유원지가 문을 연 것은 1936년이다. 송도유원주식회사가 200만원을 들여 송도역 서남쪽 약 2㎞ 되는 지역을 유원지로 개발했다. 임해유원지로 조성하기에는 부적합한 곳이었지만 일제가 강행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미국인 모스로부터 철도부설권을 사들인 일제는 1899년 경인선을 부설해 침탈을 가속화했으며 1905년에는 경부선을 놓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국내 제1의 무역항이었던 인천경제는 오히려 침체일로를 걷게 됐던 것이다.
그에 따라 인천 거주 일본인들은 그들의 상권을 고수하고자 고심하다가 마침내 경기 내륙에 눈을 돌려 그곳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쌀의 수출에 힘을 쏟았고, 그 방편의 하나로 구상한 것이 수인선(水仁線) 철도의 부설이었다.
민간 철도회사인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는 1935년 9월23일 인천~수원 간 총 52㎞의 철도부설권을 인가받아 이듬해 5월16일부터 서둘러 선로를 놓기 시작해 1937년 8월6일 완공했는데 철로 폭은 경인선의 반 밖에 안 됐다.
협궤열차 혹은 꼬마기차라 불린 것은 그 같은 내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철로를 놓기 전부터 일인들은 노선 영업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를 모면할 방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철도이용객의 '송도' 유치였다.
송도유원지는 수인선을 살리기 위해 일제가 만든 어용유원지였다. 이름을 '송도'라 한 것은 일제가 지금의 옥련동을 엉뚱하게 '송도정(松島町·마쓰시마쵸)'이라 불렀고, 역명과 유원지 이름도 그리 부른데 따른 것이다. 인천관광공사에서 시대에 걸맞은 관광단지를 만든다니 차제에 군국주의 이름표부터 고쳤으면 한다.
/객원논설위원
2011년 09월 21일 (수)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