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사치광풍(奢侈狂風)(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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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 9.15)
원현린 칼럼 /
사치광풍(奢侈狂風)
삼국유사 진한편에 보면 신라의 전성기 서라벌에는 주택이 17만8천936호가 있었고 35개의 금입택(金入宅 ; 금으로 치장한 부유하고 윤택한 큰 집)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게다가 사절유택이라 하여 계절에 따라 노니는 별장이 있었는데 봄에는 동야택, 여름에는 곡량택, 가을에는 구지택, 겨울에는 가이택 등 계절에 따른 호화저택도 있었다. 귀족들의 곳간에는 곡식과 비단이 넘쳐났고 풍악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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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제49대 헌강왕(875~886) 당시에는 경주의 민가는 모두 기와로 덮고 집들이 그을음에 그을리지 않게 하기 위해 땔감으로 숯을 사용, 밥을 짓는 등 태평성대를 누렸다고 한다. 노랫소리와 피리 부는 소리도 길에 가득하여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서라벌 귀족들이 누린 사치(奢侈)의 극(極)이라 할만하다하겠다. 역사가들은 이때부터 신라는 점차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사치 행태를 들여다보면 비교가 안 된다. 위·오·촉 삼국을 통일한 서진의 사마염 무제 당시 귀족들의 사치 경쟁은 극에 달했다. 하증이란 자는 궁중요리가 맛이 없다하여 하루에 1만전(錢)을 음식비에 썼다.
무제의 외삼촌이었던 왕개가 쌀을 쪄서 말린 쌀을 연료로 하여 밥을 짓자 이에 뒤질세라 서진 왕조 창업공신이었던 석포의 아들 석숭은 양초로 밥을 지었다.
무제의 사위 왕제의 사치행각은 1천 수 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세인들의 혀를 차게 한다. 무제가 자신의 집을 방문하자 음식을 차렸는데 먹은 돼지고기가 빛깔과 맛이 여느 맛과 달라 물으니 “여인의 젖을 먹여 키운 돼지고기”라고 대답했다. 이 정도라면 가히 사치의 압권(壓卷)이라 할 만하다. 사치 향락의 중국사에 나오는 얘기다.
나라 기울어 가는 줄 모르고 사치에 빠졌던 서진이 왕조를 오래 이어가지 못하고 단명하여 52년 만에 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치는 스스로를 망칠 뿐만 아니라 사회를 병들게 하고 급기야는 나라마저 망하게 하는 무서운 병이다.
외국의 유명 브랜드社들이 한국을 봉으로 알고 재미를 톡톡히 보고있다는 부끄러운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수치스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제도 오늘도 사치향락품들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물밀듯이 반입되고 있다.
인천공항세관이 지난 7월18일부터 8월 말 까지 여행자 휴대품 특별단속을 실시한 결과 면세 범위를 초과하여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핸드백을 밀반입하다 적발된 사례가 총 5천385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한다. 이 같은 숫자는 지난해 동기 4천579건에 비해 18% 증가한 수치다. 핸드백 외에 화장품, 고급의류, 귀금속과 보석류도 지난해에 비해 늘었다. 이번 추석 연휴를 통해 들여온 명품 또한 아직 집계는 안 됐지만 어느 정도에 이를 것인지 가히 추산이 간다.
몸에 향료를 뿌리고 휴대한 물건이 명품이라 해서 그 사람까지 ‘명품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각없이 돈푼께나 가진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의 헤픈 씀씀이가 건전사회로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무한욕망을 채우기 위한 동물적 욕구를 따라가려는 졸부들이 우리 사회에 너무 많다.
대출받은 학비등록금을 갚지 못해 빚더미 위에 앉은 대학 졸업생들이 직장을 잡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고 있다. 노숙자가 갈 곳이 없어 객사하는 예도 있다. 방학때면 급식이 끊겨 끼니를 거르는 학생들이 세계 경제대국답지 않게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사회를 병들게 하고 나라를 망치는 사치풍조는 사라져야 할 악풍(惡風)이다. 이들 사치향락 군(群)들은 부(富)의 ‘사회 환원’과 ‘기부문화’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오직 지닌 것을 과시하고 쾌락을 즐기려는 맹목적 소비사치에만 눈이 멀어있다. 그들에게 있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대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천민자본주의의 단면을 보는듯하여 마음 씁쓸하다.
2011년 09월 15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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