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매미 5덕(德)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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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10. 6)
원현린 칼럼 /
매미 5덕(德)
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경복궁에 가 보았다. 한 여름, 고궁경내를 달구던 매미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근정전(勤政殿)과 앞뜰에 서 있는 품계석이 예전처럼 눈에 들어왔다. 뒤의 건물로 가보니 왕이 신하들과 함께 나랏일을 논의하던 편전(便殿), 사정전(思政殿)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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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그 자리에 서서 잠시 임금이 만조백관(滿朝百官)이 모인 자리에서 어전회의(御前會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떠 올려보았다. 필시 백관들은 의관(衣冠)을 정제하고 입궐하였을 것이다.
조선 왕조의 임금들은 평상시 정사를 볼 때에 매미(蟬)의 양 날개를 위로 향하게 한 형상을 하고 있는 익선관(翼蟬冠)을 쓰고 정사를 보았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만원 권 지폐를 보면 세종대왕의 초상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왕이 머리에 쓰고 있는 모자가 바로 익선관이다. 곧 매미 날개를 나타낸 것이다. 임금뿐만이 아니다. 조정의 백관들도 머리에 관모(冠帽)를 썼다. 다만 왕의 모자와 달리 매미 날개 형상을 위로 향하게 하지 않고 양 옆으로 늘어트린 점이 다르다.
왕과 신하들이 머리에 쓰는 관모의 상징으로 매미 날개를 삼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옛 사람들은 매미에게 5덕(德)이 있다 했다. 그것은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信)이다.
첫째, 머리 모양이 선비가 쓰는 관(冠)을 닮았으니 文德을 갖추었다. 둘째, 이슬만 먹고 사니 淸德을 지녔다. 셋째, 메뚜기 등과 달리 농부들이 가꾼 곡식과 채소를 해치지 않으니 廉德이 있다. 넷째, 온갖 들짐승과 날짐승, 곤충 등 모든 생명체들이 땅굴이던 나무 위의 둥지이던 간에 들어 살 집이 있는 것과는 달리 매미는 집을 짓지 않으므로 儉德이 있다. 다섯째, 철 맞추어 왔다가 서리가 내리는 가을이 오면 때를 보아 떠날 줄을 아니 信德을 갖추고 있다. 관료에게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관모를 쓰도록 한 의미는 출사(出仕)하여 국사에 임하되 기술한 매미의 5덕을 망각하지 말고 선정(善政)을 베풀라는 뜻이었다.
보잘 것 없는 한 마리의 곤충에서 이 같은 덕성을 발견하여 공직자들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는 옛 사람들이다. 지혜가 넘쳐났고 슬기가 엿보인다. 매미는 수년간을 땅 속에서 지내다가 세상에 나와 여름 한 철 울고 가는 곤충이다. 매미는 집이 없다. 먹이도 많이 먹지 않는다. 그저 아침 이슬 몇 방울이면 족하다. 그러니 재물을 모을 필요도 없다. 매미는 이렇듯 청빈한 삶을 살다가 간다.
백운거사(白雲居士)로 불리는 고려중기의 문인 이규보는 “이슬만 먹는 매미 뱃속에 무슨 계산이 있겠나?”하고 거미줄에 걸려 신음하고 있던 매미를 풀어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같은 ‘매미 5덕’은 오늘 날에도 우리 공직자들에게 시사 하는바가 크다 하겠다. ‘군자(君子) 5덕’으로 삼아도 족할 것 같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널리 인구에 회자되는 시인 이형기의 ‘낙화’라는 시의 일부다. 깨끗한 떠남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멋진 문장으로 애송되고 있다. 매미가 그렇다. 매미는 일단 지상에 나오면 일년생이다. 그것도 여름 한 철 울고 간다. 서리가 내리는 가을이 오면 떠난다. 매미는 떠날 때가 되면 구차하게 연명하려 하지 않고 떠난다. 우리 사회만이 돌고 도는 ‘회전문 인사’로 지탄을 받곤 한다.
요즘 고위 공직자들 중 일부가 한 기업인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하여 진실공방이 뜨겁다. 거론되는 대다수가 머리에 선관(蟬冠)을 쓰는 관료들이다.
수뢰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제나 처음에는 ‘사실무근이다’, ‘터무니없다.’고 부인하는 인사들이다.
어제도 오늘도 부정축재 공직자들이 줄줄이 감옥으로 향하고 있다.
익선관의 의미를 잊은 게다. 매미 날개 모자를 다시 만들어 공직자들이 머리에 쓰도록 관모(官帽)로 정하는 것도 청렴사회로 가는 길 중의 하나일 성싶다.
/주필
2011년 10월 06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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