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반좌제(反坐制) 도입이라도…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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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11. 3)
원현린 칼럼 /
반좌제(反坐制) 도입이라도…
기원전 99년 한나라 장수 이릉(李陵)은 5천의 보병부대로 흉노 토벌에 나섰다가 기마부대를 주력으로 하는 8만 병력의 흉노에게 포위된 상태에서 용전분투 끝에 적병 1만여 명을 사살했으나 역부족으로 패전했다. 패장의 징계를 논하는 자리에서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은 이릉의 편에 서서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변호하다 무제(武帝)의 진노를 사 하옥되고 종국에는 궁형(宮刑)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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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은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사람은 ‘선을 행하면 복을 받고, 악을 행하면 화를 받는 것이 하늘의 도리’라고 굳게 믿었었다. 하지만 화를 당하고 난 후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천도, 시야! 비야!(天道, 是耶! 非耶!)” -하늘의 도는 과연 옳은 것인가! 틀린 것인가!- 하고 절규하며 쓰러져 갔다. 죄 아닌 죄를 뒤 집어 쓰고 억울하게 옥고를 치른 암흑의 역사 사례 가운데 하나다.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하여 정말로 죄를 지었고, 무죄판결을 받았다하여 곧 결백인 것은 아니다. 증거재판주의이기 때문에 아무리 흉악한 죄를 저질렀다 해도 범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유죄 판결을 내릴 수가 없다.
이 세상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 하는 사람도 있으나 죄를 범하고도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는 범인들이 얼마든지 있다. 국가에서 수사력 부족 등으로 미처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다.
지난 달 31일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1심 재판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재판에서 법원은 유일한 직접증거인 뇌물 공여자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이 간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검찰은 무죄 판단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항소할 방침이라 한다. 진실공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보다 앞서 지난 27일 대법원은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뒤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돼 옥살이를 했던 한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무죄가 확정된 이 시민은 살인 누명을 쓰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모범수로 가석방되기까지 15년간 옥살이를 했다. 39년 만에 누명을 벗은 것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억울한 사건이 한둘이 아니다. 내 청춘, 내 인생을 돌려달라고 아무리 울부짖어 소리쳐도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헌법은 국가 형사사법의 잘못으로 죄 없이 구금 또는 형 집행을 받은 사람에게 국가가 손해를 보상하는 형사보상제도를 두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한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고 나온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에게 그 어떤 보상 방법도 없다. 억만금을 준다 해도 감옥에서 지낸 잃어버린 세월과 누명에 대한 충분하고 상당한 보상은 되지 못한다. 한번 침해된 인권은 회복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열사람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시민을 죄인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라는 법격언이 있는 것이다.
검찰이 기소한 사건이 무죄판결을 받았다면 이는 의사가 오진을 하여 멀쩡한 사람의 생살을 도려내는 경우와 같다.
검사와 판사, 변호사를 일러 ‘법조삼륜’이라 한다. 3자가 결탁하여 죄지은 사람을 풀어주고 죄 없는 사람을 옥살이 시키라는 의미에서 세 바퀴가 아니다. 정의라는 이름하에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여 법에 따라 심판하라는 의미다.
당송률(唐宋律)의 단옥률(斷獄律;소송법)에는 관사(官司)가 증거를 조작하여 억울한 누명을 씌워 무고한 양민에게 죄를 부과한 경우, ‘반좌(反坐)형벌’ - 거짓으로 죄를 씌운 자에게 그 씌운 죄에 해당하는 벌을 줌 - 을 받도록 했다. 한 예로 곤장 60대 형벌에 해당하는 죄수에게 증거조작 등으로 곤장 100대를 시행 했다면 초과분 40대를 자신이 맞아야 했다. 그 옛날에도 재판의 공정을 기하기 위해 판관에게 이처럼 주의의무를 지웠었다. 오늘날 승소사례비를 챙기는 변호사나 정치검찰, 정치판사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제도다.
수사기관이 인권을 아랑곳하지 않고, 법원이 인권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다면 이 땅에 정의사회 구현은 요원하다하겠다. 인권이 보장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사회가 진정 정의로운 사회다.
/주필
2011년 11월 03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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