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인천 조폭들(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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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1.10.24)
인천 조폭들
/( 791 )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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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는 광복 후 사회가 혼란한 틈에 등장했다. 어원은 불분명하지만, 짐작컨대 영어 '갱(gang)'과 한자어 '패(牌)'가 합쳐진 게 아닌가 여겨진다. 영한(英韓)의 동의반복 합성어라고 설명하면 그럴듯해 보인다.
1958년 무렵은 마치 '깡패들의 전성기' 같은 때였다. 그해 인천에서는 남의 결혼식 피로연에 가 기물파괴와 구타를 자행한 깡패두목 최 모를 검거했고, 대구는 473명을, 마산에서는 67명을 일제히 잡아들였다.
'정치깡패'도 등장했다. 1960년 4·19혁명 당시 임화수, 유지광 등이 고려대생을 습격했다. 그것이 자유당정권의 몰락을 재촉했던 것은 두루 아는 일지만, 영 풀리지 않는 것은 '권력'과 '깡패' 사이의 연결고리이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조폭'이 '깡패'의 자리를 차지했다. '깡패'가 조직화된 것이다. 1986년 국내 최대 폭력조직인 서방파 두목 김태촌이 인천뉴송도호텔 사장을 칼로 난자해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은 기억에 새롭다.
그 이듬해 4월 인천유흥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최태준이 호남파의 아지트를 습격해 생선회칼을 휘둘렀던 꼴망파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우리 사회는 '조폭영화'에 손을 들어주는 등 폭력불감증이 걸려 있다. 지난 22일 밤에는 급기야 도심 한복판에서 인천 조폭들이 한동안 잠잠했던 유혈 난투극을 또 벌였다고 한다. 이젠 조폭들까지 기승을 부리니, '인천 말세'다.
/객원논설위원
2011년 10월 24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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