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임자가 따로 있다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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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11.17)
원현린 칼럼 /
임자가 따로 있다
-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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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기억나는 시중의 하나인 조병화 시인의 ‘의자’라는 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만물은 변화하고 자리 또한 바뀐다. 심지어 하늘의 별자리까지도 바뀐다. 인간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것은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들어선다. 이것이 역사의 무대이고 흐름이다.
그 누구에게 있어서나 이 세상은 잠시 들렀다가 가는 곳이다. 그 누가 되었던 간에 의자는, 자리는 후에 오는 이를 위하여 내어 주어야 한다. 본래부터 내 자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간단한 이치를 모르고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는 인사들이 너무 많다. 금융감독원 등 고위 공직자들이 10월 말 ‘전관예우금지법’으로 불리는 ‘공직자윤리법’ 개정 시행을 앞두고 대거 사표를 내는 진풍경이 벌어졌었다. 말할 것도 없이 이유는 로펌이나 금융회사 등에서 마련한 새로운 의자에 앉기 위함이었다. 새로운 법 시행으로 관련업종에 일정기간 재취업이 제한되기 때문이란다.
이(利)를 쫓아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는 전형적인 욕심 많은 인간상을 여실히 드러낸 행위들이었다. 소급입법(溯及立法)금지가 대원칙이지만 이 같은 경우에는 상황에 따라 예외를 인정하는 것도 좋을 성싶다.
언젠가 한번 본란에서 ‘우리 사회 X피아들’이라는 제하에서 돌고 도는 인사를 지적하며 우리사회 뿌리 깊이 박힌 그들만의 철기(鐵器)를 꼬집었었다.
미국에서는 ‘회전문 이론’으로 불리운다. 미국에서 전관예우라는 말과 비슷한 표현은 ‘회전문 현상(Revolving Door)’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61년 고별연설에서 군산(軍産)복합체의 과도한 권력과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생겨난 개념이다.
군장성들이 은퇴해 국방부 관리가 되고 국방부에서 물러난 뒤 방위 산업체 간부로 들어가 군과 정부 그리고 군수산업간에 이해관계를 형성하면서 국가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었다.
임자가 아닌 자가 앉으니 부정을 일삼게 되고 부작용을 낳는다. 지난해 금품수수로 파면이나 해임 등 중징계를 받은 공직자는 624명으로 5년 전인 2006년 114명에 비해 부쩍 늘어 5배나 증가했다.
그러잖아도 일자리가 없어 난리다. 대졸자들은 기업에 입사원서를 수 십군데 제출하고서도 기다려도 연락이 안 온다고 한다. 인맥 연줄이 있어야 취업이 가능한 이상한 사회다. 수능을 전후하여 고3수험생의 자살 소식도 우리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높은 자리일수록 “빙글빙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에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인데…”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아무나 앉는 의자가 아니다. 기업이든 공직이든 고위직일수록 더욱 그렇다. 아무리 회전의자라해도 내 자리가 아니면 앉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함량미달로 앉을 자리가 아님에도 앉아 있는 인사들이 너무 많다.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내 몸에 맞아야 내 옷이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은 좋은 비단옷이라도 내 옷이 아닌 것과 같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두 번에 걸쳐 8년의 임기를 마치자 미국민들 사이에서 종신 대통령이나 국왕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자 그는 “국가에 대한 나의 봉사는 8년이면 족하다”하고 떠났다는 일화도 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한 시인은 노래했다. 자리를 비워주어야 할 때를 알고 일어나 주는 것도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 중의 하나다.
/주필
2011년 11월 17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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