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정승열(65회) 세상사/연평도 이야깃거리(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1.11.30)
▧ 세상사 ▧
연평도 이야깃거리
/정승열 인천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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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에 북으로부터 포격이 있은 지 1년이 지났다. 그 동안 많은 언론 보도 덕분에 연평도는 매우 불행한 숙명을 지닌, 가여운 섬이 되어 버렸다. 연평도 섬에 사는 주민은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살아야하는 매우 불쌍한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지금 학생들에게 연평도에 대하여 글을 쓰라고 하면 거의가 이런 내용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리라 짐작한다.
틀린 말이라고 항변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연평도는 지금의 불안을 덮고도 남을 만큼 매우 귀하고 큰 섬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땅의 면적으로 큰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어느 섬도 가져보지 못한 깊고 큰 이야기를 가진 귀한 섬이라는 뜻이다.
문학은 이야기와 관계가 깊다. 그 지역의 자연과 경관, 그리고 상징물, 또는 그 지역의 역사나 사건, 인물, 그리고 그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설화 등은 문학이 되는 큰 자산이다. 그런 면에서 연평도는 문학적으로 큰 자산을 지닌 섬이며 앞으로 어떤 작품이 거기로부터 나올지 가늠이 안될 만큼 기대가 되는 섬이다.
우리나라 민간 신앙에서 신으로 추대 받는 장군이 두 명이 있는데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과 고려시대 임경업 장군이다.
무당이 기원의 대상으로 모시는 신이다. 그 중에 임경업 장군은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참배 해야 할 신앙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삼남의 배들이 연평도까지 와서 충민사에 참배하고 고기잡이에 나갔다.
연평도에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병자호란 무렵 병사를 이끌고 중국에 전쟁을 하러 가다가 연평도에 머물렀던 임경업 장군이 병사들을 먹이려고 산에서 나뭇가지를 베어다 어살을 만들어 조기를 잡은 것이 조기잡이의 시초였다고 한다. 고려 때부터 연평도는 이미 조기잡이의 본산이 된 것이다.
조기잡이라고 하면 그 유명한 파시(생선시장)를 빼놓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 3대 파시가 연평도 파시, 칠산도 파시, 위도 파시를 꼽는데 모두가 조기잡이와 관계가 있는 섬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 "토산은 석수어(조기)가 남쪽 연평평(延平坪)에서 나고, 봄과 여름에 여러 곳의 고깃배가 모두 이곳에 모여 그물로 잡는데, 관에서 그 세금을 거두어 나라 비용에 쓴다"했다. 조선 전기부터 조기 떼가 대규모로 잡히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기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황해도 연평평에서의 조기잡이가 등장한다. 연평 파시는 연평 파시평, 연평 작사라 불렀다. 이런 기록을 보면 연평 파시는 이미 조선 전기부터 성행했던 것 같다. 우리가 잊고 있는 연평도의 큰 이야깃거리이다.
연평도에는 그것 말고도 큰 이야깃거리가 또 있다. 바다에 제사를 지내는 제일 큰 규모의 풍어제의 근원도 연평도에 두고 있다. 현재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은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82-나 호로 지정되어 있다. 연평도 조기잡이와는 깊은 관계가 있는 풍어제이다.
또 연평도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구한말 의병들이 일본군 수비대에게 40여 명이나 장열하게 전사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서해 곳곳에서 불려지는 민요 중에 연평도와 관련이 있는 것들이 많다. 배치기, 니나나소리(나나니타령), 닻감는 소리, 바디소리 등이 그 예이다.
연평도가 비록 작은 섬이며 지금은 주민이 적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연평도를 작게 보아서는 안 된다. 연평도는 그 어떤 섬보다도 큰 섬으로 대우해 주어야하며 함부로 총질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섬이라는 것을 북에 있는 사람들이 빨리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2011년 11월 30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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