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라이러!’는 절대 해답이 아니다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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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12.13)
나채훈의 중국산책/
‘라이러!’는 절대 해답이 아니다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오늘의 우리 정당이 패거리 수준일 수는 없다. 어중이 떠중이, 지연과 학연 따위에 얽힌 도당은 결코 정당이 아니다. 의리와 인정의 지푸라기로 묶인 무리가 정당의 정명(正名)을 누릴 수는 없다.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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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정당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혹시’ 했더니 ‘역시’로 비틀거린다. 아직도 ‘조화(造花)의 정당과 계절풍(季節風) 정당’의 과거 수준 그대로다.
‘조화의 정당’이란 역대 여당(與黨)에 붙여진 낙인과 다름없다. 관계(官界), 학계(學界), 그리고 언론계(言論界) 등 여러 마당에서 ‘꽃으로 보이는 인사’들을 끌어 모아 꽃꽂이 묶음처럼 엮어 낸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처음 엮어 낼 때는 그래도 생화(生花)의 싱싱함이라든지 다소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으나 곧 조화의 초라한 몰골로 바뀌어 버렸다. 여당의 정모 의원은 최근 트위터에 ‘추락하는 새는 날개가 없다. 지금 한나라당에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하고 했다지만 퇴색한 조화정당의 본모습일 뿐이다.
‘계절풍의 정당’은 역대 야당(野黨)에 붙여진 자조다. 부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이리 눕고 저리 눕는다. 여당의 실정(失政)에 기대어 반짝 장세를 누리다가 어느새 ‘나사 풀린’ 모습으로 바뀐다. 국민들에게는 하등 관심조차 없는 ‘자기들만의 룰’을 치고받으며 국민과 대의를 앞세우니 여당의 2중대라는 소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다.
‘라이러!’
한자로는 ‘來了’라고 쓴다. ‘왔다’는 뜻이다. 중국 근대의 작가 노신(魯迅)은 자신의 시사평론을 잡문(雜文)이라 불렀는데 그 가운데 <라이러!>는 손꼽히는 명편으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꽤 친숙해져 있는 글이다.
“최근 들어 사람들은 ‘과격주의가 왔다!’고들 말한다. 신문에서도 날마다 ‘과격주의 라이러!’라고 흥분해서 써대고 있다. 돈 깨나 가진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언짢은 소리다. 관료들도 자기 나라 노동자들을 경계하고 러시아인의 감시에 야단인 듯하다. …… 야단법석인 것도 무리는 아니고 ‘엄중조사’도 그럴 법하다. 그러나 단 한 가지는 묻고 싶다. 과격주의란 무엇인가?”
노신은 무엇이 왔다는 소리만 요란한 가운데 막상 알맹이가 분명하지 않은 그 ‘무엇’이 과연 무엇인가를 묻는다. ‘왔다!’는 그 외마디. 그 무엇이 왔는지, 왜 왔는지를 따져보지 않고, 그 무엇이 오리라는 것을 어찌하여 미리 내다보지 못했는가를 되돌아 살펴보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한 나라 한 사회를 이끄는 명색 정치인들과 그들 곁에 있는 지식인들이 합창하듯 ‘라이러!’라고 할 것인지 갑갑해서 하는 말이다.
경제도 그렇다. 자본주의 시장원리가 그 나름대로 경제의 성장을 촉진하는 동력으로써 기능을 갖고 풍요의 내일을 기약하는 것은 분명하다. 자유경쟁이 동기의 부여와 성취의 보람을 키운다는 점에서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참여와 배분의 정의에서 보면 그런 원리가 언제나 성공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 더러는 시장의 실패를 동반하게 마련이라는 것도 자명하다. 그 시장의 실패를 어떻게 교정할 것인지는 오늘날 지구적 숙제가 되고 있다. 그 처방전은 간단치 않다. 시장원리의 폐기에서부터 그 수정에 이르기까지 처방의 깊이도 그렇고 폭은 너무나 다양할 것이다. 그런데 한 방향으로만 우기고 있다.
오늘 우리 시민이 기대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당은 조화의 정당에서 벗어나면 될 테고, 야당은 계절풍이 정당에서 탈피하면 된다. 그리고 시민의 눈높이에서 새롭게 출발하면 될 일이다.
이 정도조차 간단치 않다고 여긴다? 그럼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퇴출을 명해야 한다. 공자나 맹자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제 시민은 하늘이다. 누가 떠나야 할 것인지는 재언을 요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시민의 수준에 균형을 맞출 정도의 정당이 탄생해야겠고, 우리가 직면한 ‘오늘의 시간이 몇 시인지’ 아는 사람에게 정치할 자격을 주어야 할 것이고, 그 동안에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숙의해 보는 자세가 존중 받아야 한다.
정당이 시민에게 ‘라이러!’라고 외치기만 해서는 정말 곤란하다. 그저 추락할 뿐이다. 조금이라도 양심이 남아 있다면 진심으로 반성하고 성찰한 후에 내년 총선 예비후보를 내놓으시라.
2011년 12월 13일 (화)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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