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신세계백화점(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1.12.12)
신세계백화점
/( 812 )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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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정규시장으로서 가장 역사가 오랜 것은 지금의 서울 종로에 있던 육의전(六矣廛)이다. 조선 말까지 상업경제를 지배했는데, 개항 후 양반계층과 외국상인들에 밀려 고전하다가 갑오경장 후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지방에서는 '장시(場市)'가 성행했다. 인천의 경우 강화 읍내장, 계양 황어장 등이 유명했다. 그것이 매일장(每日場) 즉 상설시장으로 발달한 것은 한참 뒤이다. 1902년 중구 내동에서 문을 연 어시장은 인천의 효시였다.
근해의 어획고가 제법 많았던 당시의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였다. 그를 필두로 해 닭전, 푸성귀전 등이 생기면서 인천의 시장사(市場史)가 시작되었지만, 근대적 의미의 상점 출현은 일본지계 안의 '양품점'이 처음이었다.
그보다 규모가 큰 상점으로는 중구 인성여자고등학교 부근에 있었던 서울 '미쓰코시(三越)' 백화점의 인천보급소와 용동마루턱 옛 중앙예식장 자리에서 1934년에 개설한 화신(和信) 백화점의 인천연쇄점 등이 고작이었다. 이들은 백화점으로 발전되지 못한 채 광복 후 사라졌고, 1954년 인천고무공업사 장범진 사장이 중구 경동에 세운 '항도(港都)'가 인천지역 최초의 백화점으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를 수용하기에는 아직 버거운 수준이었다.
그 후 뉴욕, 신화 등 여러 향토 백화점들이 문을 열었지만 안타깝게 단명했다. 반면에 1991년 이후 시티, 뉴코아, 신세계, 롯데 등이 들어오면서 전성기를 열었다. 그러나 연간 매출이 수조 원대를 육박하는 이들의 지역사회 공헌도가 빵점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그 중 신세계백화점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염치없는 일이다. 상생은커녕 '지역 경제의 식민지화'를 획책하는 것이라면 과감히 불매운동도 불사해야 한다.
/객원논설위원
2011년 12월 12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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