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성동격서’의 종주국이 어떻게 나올까?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1.12.6)
나채훈의 중국산책 /
‘성동격서’의 종주국이 어떻게 나올까?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동쪽을 공격하는 것처럼 하면서 실은 서쪽을 공격한다는 의미의 성동격서(聲動擊西)는 ‘통전(通典)’ ‘병육(兵六)’에 나오는 유명한 작전기술이다. ‘삼십육계(三十六計)’의 여섯 번째 표제이기도 한데 1991년 걸프전 당시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공격할 때 쿠웨이트에 상륙할 것처럼 보여 이라크 군을 해안 방위에 묶어 두고 실제로는 서쪽 사막 지대를 공략해 이라크 군의 퇴로를 끊고 승리함으로써 더욱 진가를 널리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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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중국인들은 성동격서에 거의 체질화된 국민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즐겨하는 태극권의 동작을 보면 대단히 유연해 마치 무용이라도 하는 듯 보이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움직임에 있어 반드시 성동격서처럼 동쪽을 겨냥하기 직전 서쪽으로 움직이고, 앞으로 나아가기 직전에는 뒤쪽으로 물러선다. 그래서 이 운동을 하다보면 유연한 동작과 달리 상당히 힘이 들고 익숙해질 때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유럽과 중동을 양대 축으로 움직이던 미국의 대외정책에 있어 그 무게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해 중국을 옥죄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10년 전부터 아시아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 발목이 잡혀 아시아 정책을 본격화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2008년 취임 이후 3년에 걸쳐 전임 부시 행정부가 벌여놓은 2개의 전쟁에서 철수할 준비를 마치자 곧바로 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당연히 예측된 수순이었다.
미국의 정책적 시프트는 위기에 빠진 경제를 회복시키는 일과 위협받는 세계 패권의 수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겨냥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에 대해 위협을 느끼는 아시아 각국이 미국에 기대면서 이러한 일련의 정책 전개가 본격화되고 있는 셈인데 미국과 유럽이 경제위기에 허덕이면서 아시아 시장을 그들의 성장 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은 원래 아시아가 자국과의 교역 관계에 있어 그 동안 공정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 간의 손해를 만회할 기회라고 여긴다는 점도 분명하다.
여기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굴기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일.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 기간 중 호주에 미 해병대 주둔 계획을 발표하고, 인도네시아에 전투기 공급을 약속했다. 필리핀과의 군사동맹을 한 차원 높이는가 하면 중국의 강력한 반대 속에서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고 있다. 베트남과도 구원을 씻고 군사·경제적 관계를 강화했다. 그리고 미얀마를 끌어안으며 중국의 기세를 억누르려 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의 양대 강국 사이에 아·태 지역의 패권을 놓고 한 판 승부를 벌이는 게임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키신저 전 미국무부 장관은 최근의 저서 ‘중국에 관하여’에서 ‘미국이나 중국 모두 아·태 지역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않고 서로 협력해야만이 두 나라가 공존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의 아시아 정책은 공존협력이 아니라 중국을 최소한 자국과는 겨루기 힘든 수준의 나라로 만들려는 것이 미국의 의도임이 분명해진 것으로 이해된다. 미국의 싱크탱크 ‘외교정책포커스’의 페퍼 소장은 며칠 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시아 각국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고 대 아시아 수출을 늘려야 한다. 이는 오바마의 일자리 창출 계획의 핵심적 요소이며 오바마의 재선을 좌우하게 된다”고 분명히 말했다.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한미FTA의 우리 국회 통과가 미국의 아시아 정책 일환임은 분명해진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군사·정치에 있어 미국과의 혈맹관계는 더욱 강화되고 있지만 경제 쪽은 중국과의 긴밀함이나 규모 면에서 미국보다 크게 앞서고 있는 실정이다. 찬성과 반대의 격렬한 혼란을 지켜보면서 중국이 과연 어떤 형태의 성동격서 전략으로 나올지 새삼 궁금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미국은 걸프전에서 재미를 본 바 있지만 지금껏 해온 것을 보면 그런 전략에 별로 익숙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신중해야 할 일을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이유다.
2011년 12월 06일 (화)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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