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풍금과 피아노(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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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1.12.23)
풍금과 피아노
/( 817 )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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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보고서'에서 아펜젤러 목사는 "일본인들이 의외로 영어를 잘했다. 서양음식도 맛있었다. 방은 넓고 편했지만, 더워서 엘라가 불평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불안한 정국으로 그들은 일본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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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입국한 것은 6월20일이었다. 이번에는 안골(지금의 중구 내동)에 숙소를 정하고, 상경시기를 관망하면서 목회를 열었다. 7월7일 마침 나가사키에서 배로 부친 풍금이 도착하자, 아펜젤러는 1시간여 동안 연주를 했다.
엘라 여사는 친구 리치 이글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헤리(아펜젤러의 별칭)가 '만복의 근원 주 하나님!'이라는 찬송 등을 연주해 봉헌했단다. 한국의 하늘에 울려 퍼진 최초의 감리교 찬송이었지."라며 감격에 찬 글을 남겼다.
이는 아펜젤러 목사가 7월29일 상경하기까지 45일간 인천 제물포에 선교의 씨앗을 뿌린 귀중한 종교적인 장면이자 인천에서 최초의 풍금연주를 한 음악도입사적 자취를 또렷이 남긴 대목으로서 기록되어야 마땅하겠다.
그런데 그 '나가사키 풍금'은 아예 행방이 묘연하고, 1933년 아펜젤러2세가 배재학당에 들여온 '피아노'를 근대문화재로 지정할 것이라니 씁쓸하다. 더불어 아직 '음악대학'도 없고, 제대로 된 '피아노연습실' 한 곳이 없어 올 이건산업음악회의 반주자가 서울까지 가서 연습을 했었다는 게 인천의 음악현실이다. 그나마 종합예술회관과 중국문화관에 연주용 그랜드피아노가 있다는 걸 위안 삼아야 하는가.
/객원논설위원
2011년 12월 2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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