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사진엽서 전시회(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2. 1.18)
조우성의 미추홀( 828 )/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사진엽서 전시회
인류의 문화·문명에 큰 영향을 끼친 발명의 대부분은 우연에서 비롯됐다. 사진도 그렇다.
방이나 거실에 뚫린 바늘구멍만한 통로를 통해 들어온 빛이 만들어 낸 '우연한 영상'을 종이에 옮겼던 것이 출발점이었다.
그 후 기계적인 이동식 암실을 만들고, 더불어 투영된 빛을 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감광판을 실용화해서 마침내 '사진기'를 탄생시켰다. 화가가 화구(畵具)를 가지고 다니듯이 사진가는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유럽에서 출생한 사진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876년이었다. 화원(畵員)으로서 수신사 김기수와 동행했던 김용원이 일본인을 청해 사진관을 연 것이 효시다. 황철과 지운영도 1883년 서울에 사진관을 열었다.
신문물의 총아인 사진의 기록성을 극대화해 상업적으로 성공시킨 것은 사진엽서였다. 세로 100㎜, 가로 148㎜ 크기의 관제엽서 한 면에 풍경 등을 담았는데 인쇄술이 뛰어난 독일서 1875년에 발행했다고 한다.
발행매수는 상상을 초월했다. 1900년대 초 유럽 각국은 한 해에 적게는 6천여만 장에서 많게는 7~8억 장까지 발행해 수집붐을 이뤘고 우리나라에도 우리 풍속과 풍경을 담은 사진엽서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제국주의 열강이 자신들의 우월적 지위를 과시한 것이었다. 여러나라들이 발행한 '인천을 소재로 한 사진엽서'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것을 어떻게 수용했으며 오늘날 우리의 시각문화 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천착하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지역문화사적 숙제다. 검단선사박물관에서 '근대조선, 조선인 사진엽서 전시회'를 열고 있는 중이다. 일람(一覽)을 권해 올린다.
/객원논설위원
2012년 01월 18일 (수)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