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당명(黨名)(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2. 2. 6)
당명(黨名)
/( 835 )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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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사물을 대신해 가리킨다. 대신할 뿐이지, 사물 자체는 아니다. 중세유럽의 연금술사들이 끝내 못찾고 만 '현자의 돌'을 구했다면 모를까, 단지 돌을 금(金)이라 부른다고 그 본질(원소)이 바뀔 일은 없다.
그럼에도 이름만 바꿔 부르면 제 운명도 달라질 것이라고 믿어 온 것은 한국정치판의 오랜 미신이다. 광복 후의 당명계보를 따지자면 이 난을 메우고도 남는데, 여야 가릴 것 없는 '성명 철학병'이 다시금 도졌다.
국민에겐 그 사람이 그 사람인데, 이름만 계속 바꾸어대니 헷갈린다. 그럼에도 공당(公黨)들이 성도, 돌림자도 모를 정체불명의 당명을 계속 강요하는 것은 집단망각증을 전제로 한 수사적 트릭으로밖에 안 보인다. 물론 수사적 트릭의 예가 정당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리은행'은 '우리들'의 허락을 사전에 받은 바 없고 '국민
은행'은 '국민'의 '은행'(국책은행)이 아님에도 넉살좋게 '국민'을 팔아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가식이 부끄러웠던지 얼마 전에 '통합민주당'으로 또 변신해 버렸다. 결코 국민의 반쪽들에게 '열려본 적도 없고', '우리당'이 돼 본 적도 없던 일에 대한 반성의 결과라 믿고 싶다. 어쨌거나,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당명을 바꾸어 다는 푸닥거리는 이제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 간판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쯤은 국민 대부분이 다 아는 이야기다. '한나라'가 당명처럼 도래하지 않았듯이, '새누리' 역시 말로써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터이다. 공약에서부터 망국적 포퓰리즘과 지역색에 엎어져 허튼 권력을 휘두르는 꼴이라도 보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졌을 뿐이다.
/객원논설위원
2012년 02월 06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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