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자동차 사이렌 소리에 ‘자나깨나 불조심’
글 조우성 시인, 인천시 시사편찬위원 사진 홍승훈 자유사진가

불은 아득한 태초부터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하늘은 벼락을 내리치고, 땅은 불을 뿜어댔으니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인류의 조상들에게 불은 신의 것이요, 가까이 할 수 없는 신성한 존재였으리라. 더불어 불은 만물을 정화시켜 주는 동시에 세상을 되살려내는 힘을 지녔다고 믿었을 것이다. 온갖 생명을 순식간에 한 줌의 재로 만들어 버리지만, 훗날 그 땅을 더욱 더 살지게 하여 화려하게 열매를 맺게 하는 대자연의 현상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인류가 그 불을 다루고, 나아가 스스로 만들 수 있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흐르고, 또 흘렀던 것일까? 그것은 얼마나 가슴 떨리는 발견이자, 경험이었을까? 그리하여 인류는 가장 강력한 천연 에너지인 빛과 열로써 문화와 문명의 싹을 키우고, 자연의 속박에서부터 서서히 벗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불을 신성시하던 저 원초적 본성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어 보인다. 전국체전 때, 강화 마니산에서 ‘하늘의 불’을 받아 대회 기간 내내 성화를 밝히는 일이라든가, 이사를 가면서 연탄의 불씨를 굳이 살려가는 풍속이 그 같은 사실을 말해 준다. 그렇지만 불은 위험한 존재다. 한눈을 팔면 언제나 생명을 넘본다. 찰나에 마귀로 돌변해 뜨거운 입으로 온갖 것을 삼켜버린다. 인류는 불과 더불어 살아오면서 화마를 쫓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다 써 왔지만, 실은 특별한 방책이 없었다. 그래서 옛날 백성들은 일단 불이 나면 모두 ‘소방수’가 되어 불끄기에 나섰다. 손에 쇠갈고리, 불채, 도끼, 불덮개, 물 양동이 등 당시의 ‘소방기구’를 들고 달려가 진화작업에 임했는데 목숨을 잃는 이가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신식 소방기구가 들어오고, 불끄기 전문가인 ‘소방수’가 등장한 것은 개화기 이후였다. 인천에서는 1884년에 ‘소방조(消防組)’가 설치되었고, 1896년에 그것이 ‘공설 소방단’으로 발전하면서 펌프질로 물을 뿌리는 것보다 다소 개량된 기구들을 선보였지만, 대형 화재에는 그것들도 속수무책이었다. ‘재앙의 해’였던 1907년에도 그랬다. 3월 5일, 지금의 중구 신포동에서 불이나 무려 400채나 되는 집을 불태웠고, 10월 19일 각국 거류지에서 또 19채가 전소되는 등 그 한해 동안 모두 7차례에 걸쳐 587채가 전소돼 인천은 큰 공황에 빠졌었다고 한다. 당시 인천부는 민심수습 차원에서 소방 시설을 대폭 보강해 저수지 설치, 증기 펌프 도입, 망루 건설, 상비대기소 설치 등을 서둘러 시행했다. 1913년에는 지역 유지들이 420여 원을 갹출해 조선인 마을인 지금의 중구 경동에 ‘상비파견소’를 신설하고 소방수와 기구를 배치하기도 했다. 인천에 현대적인 소방 활동이 펼쳐진 것은 광복 후인 1947년부터였다. ‘인천상비소방조’라는 일본식 명칭부터 ‘인천소방서’로 바꾸는 한편 자유공원 사이렌 탑에 설치한 소방 망루에서의 감시활동도 강화했다. 미국에서 원조 받은 신식 소방차 15대를 갖춰 인천을 위협하는 화마와 본격적으로 맞서 싸웠다. 그러나 1950년대에는 유난히 불이 잦았다. 겨울철에는 ‘불조심 강조주간’도 두었다.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보자’는 명작 불조심 구호는 그때 생긴 것이다. 학생들은 ‘불조심강조주간’이라고 쓴 비닐 리본을 가슴에 달았고, 인천소방서 불자동차들은 날을 잡아 사이렌을 울리며 시내를 누벼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높였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 느닷없는 사이렌 소리가 배다리 일대를 뒤흔들었다. 깜짝 놀라 뛰어나가 보니, 모교인 송림초등학교에서 시꺼먼 연기가 꾸역꾸역 솟아오르더니 금세 시뻘건 불길이 하늘 높이 뻗쳐오르고 있었다. 그 광경은 결코 ‘신나는 불구경’이 아니었다. 언제 어떻게 오셨는지, 옆에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이셨던 황인춘 선생님이 서 계셨다. 선생님과 필자는 길 한복판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불의 무서움을 절감했었다. 그 아름답던 배움의 터 송림학교는 그렇게 한순간에 사라졌다.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지금도 잊지 못하는 장면이요, 생생한 불조심 표어다.

별난 역사, 별난 물건 시리즈에 게재된 불조심 관련 물건 및 사진은 중구 차이나타운에 있는 인천근대박물관(관장 최웅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엔 희귀한 근대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관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료는 성인 2천원, 학생 1천원. 문의 764-1988
1960년대 불조심 포스터
일제시대(1930년대)
1950~60년대 석유등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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