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봉황’과 ‘준마’를 제대로 고를 때다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2. 1.31)
나채훈의 중국산책 /
‘봉황’과 ‘준마’를 제대로 고를 때다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공학적 논의가 분분하다. 이번 선거가 새로운 시대의 원년을 이루어야 국격도 높아지고 국민의 존엄성도 살아날 텐데 선거 때면 단골로 등장하는 옛 정객을 비롯해 선거법 위반에다 정체성마저 혼란스러운 갖가지 인물들이 여의도행 티켓을 쥐겠다고 저마다 야단들이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두 사람의 상징적 인물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서울대학교 법대 출신의 전설적 도망자’, ‘재야의 대부’라고 불리는 장기표 씨와 아직도 창창한 나이에 ‘하버드 엄친아’ 언론사 사장으로 승승장구하다가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홍정욱 씨다. 장기표 씨는 20년 전 총선에 앞서 민중당을 창당하고 서울 동작갑에 출마하여 쓴 잔을 들이켰다. 벌써 그의 나이 60대 후반, 그가 이번에는 ‘국민생각’이라는 중도 신당의 주역이 되어 또 다시 정치판에 나섰다. 그동안 여러 차례 선거에 나섰으나 번번이 떨어져 어찌 보면 옛 정객의 하나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국회의원 한 번 못했다고 해서 패배자라고 여길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정치를 성직(聖職)으로 알고 도전장을 띄우는 그는 우리에게 시대정신의 참뜻을 일깨워주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홍정욱 씨는 어떤 점에서 장기표 씨와 극명히 대비된다. 18대에 간단히 노원 지역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쇄신파의 일원으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 4년(18대 국회의원)은 실망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냉소와 불신을 씻지 못했다. 직분을 다하지 못한 송구함이 비수처럼 꽂힌다”며 ‘정치 도전 실패’라는 계산서 한 장을 던졌다. 그가 실패자일까? 아닐 것이다. 그는 “4년 전 세상이 조금은 더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과 열망이 있었으나 돌아보니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앞으로 정치를 떠나 젊은이들과 삶의 지혜를 나누고 희망을 주는 일을 하겠다. 국회보다 중요한 곳이 세상에 많다”며 새로운 시대를 위한 자신의 새 길을 당당히 밝혔었다.
70줄을 바라보는 노정객(?) 장기표 씨의 정치 실험이나 40대의 싱싱한 초선의원 홍정욱 씨의 정치 포기는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역술가 사마계주의 지적처럼 ‘봉황’과 ‘준마’의 역할로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당시 잘 나가는 두 벼슬아치가 사마계주에게 다음과 같은 비웃는 말을 했다.
“많이 배운 현명한 사람은 높은 지위에 올라 나라의 녹을 먹는 귀인이 되어야 하는데 선생께서는 어찌 귀인의 길을 걷지 않으시고 길거리에서 점이나 치십니까?”
사마계주가 웃으며 대꾸했다.
“그대들이 말하는 배우고 현명한 귀인이란 자들은 참으로 부끄러운 존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구려. 권력자 앞에서 연실 머리를 조아리고 비위를 맞추면서 권세를 좇아 이익을 바라고 패거리를 지어 올바른 자를 밀어내 지위와 명예를 독차지하는데 눈이 어두워져 있으니 말이오. 그들 귀인이 그처럼 사리사욕을 바라고 법을 어겨가며 백성의 것을 빼앗는데 군주의 위광을 이용하니 이보다 더한 포악함이 어디 있겠소. 칼을 든 강도떼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되오.”
두 벼슬아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마침내 사마계주가 마지막 충고를 했다. “준마는 늙은 당나귀와 짝을 지어 수레를 끌지 않기에 칭송받으며, 봉황은 제비나 참새 따위와 무리를 짓지 않기에 빛나는 것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진실로 올바르게 배운 현명한 사람은 어리석은 자들과 함께 줄을 서지 않지요. 높은 지위의 귀인이란 그런 사람들의 몫이어야 하지 않겠소이까.”
홍정욱씨는 늙은 당나귀와 함께 수레를 끌지 않겠다며 정치판을 떠난 준마에 비유할 수 있을 터이고, 장기표 씨는 제비나 참새 따위와 무리를 짓지 않겠다며 20년 동안 국회의원 배지에 연연하지 않고 정치해온 봉황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혹자는 두 사람 모두 현실정치를 모르는 이상주의자 내지는 세상에 별난 사람 몇 명 쯤 있을 테니 그런 정도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땅의 국회의원 선거사를 되돌아 볼 때 분명코 우리는 봉황과 준마를 고르는데 별로 성공한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봉황과 준마가 여의도에 가면 참새나 제비, 늙은 당나귀로 변하는 뼈아픈 일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이번만은 심사숙고, 또 숙고하여 제대로 고를 때다.
2012년 01월 31일 (화)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