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삶과 예술(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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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2. 4. 4)
삶과 예술
/( 860 )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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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화가 '미하일 네스테로프'는 1907년에 '톨스토이'상을 그렸다. 마을앞 시냇가에 서 있는 말년의 톨스토이. 그는 허름한 푸른색 농부옷을 입고 있었다. 길고 흰 수염과 검은 허리띠, 갈색의 나무지팡이가 잘 어울린다.
그러나 그같은 모습이 영지를 가졌던 대지주 톨스토이의 위선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제가 부렸던 농노들에게 기꺼이 땅을 나눠 주고, 저작권까지 사회에 되돌렸던 그에게는 스스럼없는 차림새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구한말 일당(一堂)은 당대의 명필이었다. 기교며 아치가 획 하나하나에 살아 사람을 유혹한다. 그 멋진 운필이라니! 싶다. 하지만 '을사오적'이 되기까지의 과오로 인해 이완용의 작품은 속되게 말해 지금도 완전 '개값'이다.
반면에 백범 김구 선생의 유묵들을 보면 언뜻 예술 그 자체로서의 가치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일당 수준의 기교는 차치하고 금세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자획의 숨결이 그 시절의 엄혹한 풍상만을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조용히 들여다보면, 예술적 기교를 넘어선 심오한 '정신'이 고즈넉이 깃들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이 그를 놓칠 리 없다. 요즘 웬만한 족자 하나가 1억 원을 호가하는 것은 기꺼이 모시고 싶은 마음의 발현이리라.
다시 톨스토이. 그의 저택앞에는 '빈자들의 나무'라고 불리는 거목이 있었다고 한다. 가난한 농민들이 이 나무 아래서 도움을 청하면 톨스토이는 그들에게 10루불짜리 은화 한 닢씩을 주었다고 전한다. 이웃과 콩 반쪽도 나누어 본 적이 없는 자들이 천연덕스럽게 '빈자의 슬픔'을 노래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객원논설위원
2012년 04월 0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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