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꾀를 내도 죽을 꾀만 낸다더니…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2. 3. 6)
나채훈의 중국산책 /
꾀를 내도 죽을 꾀만 낸다더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여야 공천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혹시나 기대했더니 역시 누더기 공천에 그치고 말았다. 4년 전, 8년 전의 낡은 음반을 재탕 삼탕하면서 국민경선이니 공천혁명이니 하는 선거철의 수사만 요란했다는 평가를 받기 족하다. 오랫동안 깔고 앉았던 기득권에 약간의 색깔을 입혀 놓고서 자당(自黨)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결론이 솔직한 심정이다. 특히 민주통합당의 경우는 “정체성이니 도덕성이니 개혁성 운운한 것은 국민을 우롱한 것”이라고 하는 한 예비후보의 탄식에 수긍이 간다. 그 밥에 그 나물을 놓고 진수성찬 대접하겠다며 거짓 초대장을 남발한 것과 무엇이 다르랴 싶은 것이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정치는 민심 위에서 부유한다. 국민이 물이고 정당이니 정치인은 그 위에 떠 있는 나룻배에 불과하다. 민심은 시대정신을 만들고 변화를 갈구한다. 인류 역사가 그렇게 진전해 왔고 민심에 역행하는 권력은 여지없이 도태되었다. 구두탄에 그치는 개혁과 쇄신은 그들만 불행하게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국민까지 불행하게 만든 예는 무수히 많다. 여야 공천권을 가진 이들이 재삼 숙고할 일은 왜 안철수 현상이 생겼는지, 어찌하여 나경원 정도의 인기 있는 정치인이 지지율 5%에서 출발한 시민운동가에게 패했는지에 대해서다. 자가도취에 빠졌기 때문이 아닌가.
전국시대 제(齊)나라 정승 추기는 강대국의 뛰어난 정치인으로 신장이 8척 장신에다 훤칠한 외모로 유명했다. 인기 있는 현악기 연주가이기도 했다. 어느 날 그는 손꼽히는 미남자 서공(徐公)을 떠올리며 아내에게 둘 중 누가 더 잘 생겼는가 물었다. 아내는 주저없이, “그야 당신이 훨씬 뛰어나죠. 비교해 볼 뭐가 있겠어요” 했다. 추기는 기분이 좋았으나 확신이 서지 않아 첩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첩은 함빡 웃으며, “나리가 훨씬 낫습니다” 하고 치켜 세웠다. 추기는 그래도 미심쩍어 그날 자신을 찾아온 손님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손님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비교할 상대조차 안 됩니다. 추 정승님이 남자다운 기풍을 천하에 누가 대적하겠습니까?”
추기는 그제서야 자신이 제일의 미남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공교롭게도 서공을 만나게 되었다. 추기는 상대를 요모조모로 세밀히 뜯어 봤다. ‘참 잘 생겼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공과 함께 거울 앞에서 비교해 보기로 했다. 막상 거울 앞에서 보니 서공이 훨씬 뛰어남을 알 수 있었다. ‘그랬구나’ 하고 추기는 곰곰 아내와 첩과 손님의 칭찬을 다시 헤아려보았다.
추기는 깨달음을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제위왕에게 고했다.
“신은 확실히 서공에게 못 미친다는 걸 깨닫고 다음과 같이 헤아렸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사랑했기에 그렇게 말했고, 첩은 주인을 두려워했기에 그렇게 말한 것이지요. 손님은 신에게 구할 바가 있었기에 그렇게 대답한 것이구요. 대왕께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제나라는 120개의 성읍을 가진 대국입니다. 후궁의 여인들은 대왕을 사랑하고, 조정의 대소 신료들은 대왕의 위엄을 두려워합니다. 따라서 대왕께서 지금 말솜씨에 도취하신 정도가 어찌 신의 경우에 비할 바 있겠습니까.”
추기는 입에 발린 칭찬으로 자가도취에 빠지는 위험을 간한 것이었다. 제위왕은 현명했는지라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 조서를 내렸다.
- 지금부터 조정대신이나 관리들, 그리고 백성들 가운데 과인의 잘못을 면전에서 지적하면 상등(上等)의 상(賞)을 내릴 것이고, 상소문으로 간하면 중등의 상을 내릴 것이며, 공공장소에서 허물을 비평하는 자에게는 하등의 상을 내리겠다.
이 조서가 발표되자 군신들은 앞 다투어 간언했고(群臣進諫), 궁성의 문전과 뜰에는 인파가 몰려 마치 시장바닥같이 되었다(門廷若市). 이것이 문전성시의 고사가 생겨난 배경이다.
도덕성, 정체성, 개혁성을 따져 공천하겠다는 다짐에 뜻있는 젊은 인재들이 문전성시로 몰려와 신청서를 냈는데 결과는 계파 나눠먹기에 범법을 다반사로 하고 정체성이나 개혁성은 눈 씻고 봐도 없는 인사들이 기득권을 등에 업고 버젓이 공천자 명단에 오르고 있다. 확신하건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대정신이 없는 이런 기만극은 분명 가혹한 심판으로 나타날 것이다.
2012년 03월 06일 (화)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