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조미수호통상조약(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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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2. 5.23)
조우성의 미추홀
- 조미수호통상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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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미국과의 첫 조우는 불행하게도 대동강에서 벌어진 '제너럴셔먼 호 사건'이었다. 그 후 사태가 신미양요로 번져 갔으나 청국의 중계로 제물포에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함으로써 관계를 재정립했었다.
조약을 체결한 해는 1882년 5월22일.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이었다. 그 사이에 미국은 인천상륙작전으로써 신미양요 때 진 '피의 빚'을 갚았고 금년 들어 양국은 FTA를 타결해 새로운 도약의 세기를 맞게 되었다.
불과 한 세기 전, 조선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불태우며 청국, 러시아, 일본이 각기 전쟁을 일으켰던 동아시아의 황당한 정세를 떠올리면 최소한의 용미(用美)라도 해 그를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오늘이다.
그러자면 먼저 미국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한미 관계사 등을 면밀하게 천착해야 할 터인데 수교 130년을 맞는 오늘날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무덤덤해 보인다. 조약 체결지인 인천에서도 기념식 거행이 전부였다. 그런 가운데 성김 주한 미국대사와 송영길 시장이 조약 체결지로 알려진 '화도진'을 찾은 것은 상징적이었다. 그것은 서로 잘 아는 것 같지만 기본적 역사 인식조차 아직 미궁 속에 있음을 반증한 만남이기도 했다.
선교사 연구가 박철호씨는 연전에 1892년 2월 아펜젤러 목사가 코리안 레포지터리에 쓴 '한국의 개국 : 슈펠트 제독의 증언'과 1901년 1월 존스 목사가 코리안 리뷰에 쓴 '새로운 세기', 그리고 조약 체결 당시 월미도 해상에 머물렀던 스와타라 호의 함장 쿠퍼의 증언 등이 모두 '화도진' 체결설을 부인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미스터리는 영국, 독일과의 수호통상조약이나 신미양요 때의 도판이나 사진은 실증자료로 남아 있는데 유독 조미수호통상조약 때 것만은 행방이 묘연하다는 점이다. 가까운 장래에 당시의 사진이나 도판이 발굴돼 조약 체결 기념비가 화도진 공원과 파라다이스 호텔 두 곳에 서있는 오류라도 불식시켰으면 한다.
/객원논설위원
2012년 05월 23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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