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백락(伯樂)의 꿈’을 가져본다(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2. 5.22)
나채훈의 중국산책/
‘백락(伯樂)의 꿈’을 가져본다
잠룡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시기가 왔다. 그들의 정치 일생에 있어 최대의 승부처이니만큼 갖가지 소신이나 정책을 내놓는 것은 물론 때론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언행도 나타난다. 일단 관대하게 봐줄 일이다. 정치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가져볼 일이고 박근혜든 문재인이든 안철수든 다른 잠룡 누가 대권을 잡은들 무슨 상관이 있느냐, 누가 되든 세상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식의 유권자가 지식층에 오히려 많지 않느냐는 우려도 진지하게 걱정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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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고 만들어진다는 그 평범한 진실은 수긍하면서도 지도자를 만들 생각은 않고 오늘날처럼 문제투성이의 복잡한 현실을 말끔히 해결해 줄 지도자를 마치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말이다.
1987년 이후 대다수의 지도자가 선동가 형(型)이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능력과 자질을 가진 인물을 키우기는커녕 비난하고 끌어내리면서 오히려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이번에도 또 그런 식으로 했다가는 자칫 ‘눈 앞에 천국이 있다’고 속삭이는 사이비 교주 같은 인물이 튀어 나와 의외의 결과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진정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 줄 지도자의 출현은 어려울까? 아닐 것이다.
고사에서 말하듯이 ‘백락(伯樂)이 없었기에 천리마(千里馬)가 등장하지 않은 것’이다. 백락이 시장바닥에서 소금가마를 나르는 천리마를 본 순간 너무나 슬퍼 통곡하자, 말도 자신을 알아주는 백락의 슬픔을 알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세유백락연후유천리마(世有伯樂然後有千里馬), 상유이백락불상유(常有而伯樂不常有). 그러니까 백락이 있은 후에 천리마가 있다. 천리마는 세상에 늘 있다. 하지만 백락은 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알아보지 못할 뿐이라는 이 절절한 탄식에 나는 몇 번이고 동의한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세계가 손꼽아 주는 기업가, 학자, 예술가, 스포츠맨 등등 인재가 수두룩하다. 그런데 유독 정치 분야에서는 세계적 지도자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인물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다. 문제는 우리 정치판에 백락이 없다는 점이다. 박지성의 후계자가 없는 게 아니라 제2의 히딩크가 없고, 소녀시대만큼 뛰어난 가수 후보생이 없는 게 아니라 제2의 이수만 같은 정치판의 백락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는 정치지도자를 택하는 대중 투표라는 과정이 있다. 투표에 임하는 국민 다수가 백락의 수준이라면 간단하겠으나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2012년 한 해 동안 우리 정치판은 열심히 화장하고 리모델링하고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결국 12월 하순에 지도자를 탄생시킬 것이다. 그런데 국민 다수가 백락의 수준이 못된다. 그렇다면 대대적인 리더십의 변화는커녕 또 다시 ‘천리마를 고대하며’ 5년의 뒷걸음질을 감수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해결책은 잠룡들이 어리석은 유권자의 표를 기대하지 않고 성숙한 국민의식을 일깨우면서 투표일까지 노력해 달라는 원론적 부탁만 해야하는 것일까?
홍콩의 「명경(明鏡)」이란 매체는 베이징 정가 소식에 밝은 것으로 유명한데 최근 중국 공산당이 당 중앙위원과 부장 등을 포함한 350여 명이 모여 차기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 위원을 뽑는 내부 투표를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투표는 그동안 선임자에 의해 지명되는 방식으로 최고권력자가 만들어진다는 오해(?)를 불식시켰다. 물론 그들 350여 명이 백락 수준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으나 적어도 공산당이라 해서 선임자의 낙점에 의한 권력 승계는 아니라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잠룡들의 주위에는 백락을 자처하는 선거참모들이 모여 있거나 한창 모이고 있는 중일 것이다. 우수한 기획자도 있을 테고, 유세 전문가, 세몰이 노하우를 가진 인물들이 대부분일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떡고물에 눈이 어두워 지연, 혈연, 학연을 미끼로 배타적인 파벌을 만들려고 혈안이 된 선거꾼들이 상당수가 있을 터. 그리고 그들이 노리는 권력이란 천리마조차 백리마(百里馬), 십리마(十里馬)로 만드는 그야말로 우리 사회를 후퇴시키고 주저앉히는 참담한 야합으로 결말나기 십상이다. ‘백락의 꿈’을 간절히 기대하는 까닭이다.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2012년 05월 22일 (화)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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