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도덕적 여과 장치는 진정 없는가?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2. 5.15)
나채훈의 중국산책/
도덕적 여과 장치는 진정 없는가?
학식이 높고 직업윤리가 남달라야 할 전문가 집단이라 해서 세속적 유혹에 대해 특단의 면역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겠지만 적어도 ‘존경하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사람’으로 지칭하는 역사적 인물들로부터 스스로 유배형을 받으려는 담합 사회의 야합이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질타 속에 ‘이순신과 제갈량’을 한·중 양국 수교 20주년에 다시 떠올려 보는 일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을 것 같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두 사람은 조국을 구하려는 전선(戰線)에서 장렬히 목숨을 바친 우국(憂國)의 교양인이라는 공통점 외에 물질보다는 정신의 창고를 채우려는 후대의 지식 전문가들로부터 존경받거나 좋아하는 인물의 앞 순위를 틀림없이 차지해 왔다.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 갑오년 8월 그믐날의 기록을 보면, ‘아내의 형세가 위중하다는 연락이 왔다. 지금쯤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랏일이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른 일에 생각이 미칠 수 있으랴만 두고 온 3남 1녀 자식들이 살아갈 일이 아득하구나’는 대목에서는 절로 콧등이 시큰해진다. 이것만이 아니다. 정유년 4월, 백의종군해서 임지로 내려가던 중 영광에서 모친 별세의 소식을 듣고 금부도사에게 부탁하여 아산으로 돌아가 어머님 영전에 절을 올렸으나 다음 날이 장례식이건만 친구에게 뒷일을 맡기고 전선으로 향해야 했다. 그때의 사무치는 심정이 어떠했을까. 정혜사의 스님 덕수로부터 국가를 위해 수고한다는 치하로 짚신 한 켤레 받은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으나 신발 없는 부하 병사에게 주고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는(정유년 5월 7일자) 대목에 이르면 절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조정의 공도(空島) 정책에 따라 연안 선박을 축조하는 일이 금지된 상황에서 전란이 다가옴을 예감하고 조립 직전까지 거북선의 모든 걸 만들어 두었다가 왜란이 일어나기 이틀 전에 완성품을 만듦으로써 조국을 누란의 위기에서 구한 그 혜안은 또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순신은 원래 광화문 동상에서 보듯 우람한 체격에 근엄한 모습이 아니었다. 여성처럼 곱살했으며 선비처럼 단아했고 병약하였다. 하지만 남의 것을 탐하거나 권세를 부리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분수에 어울리지 않는 행위는 삼갔다.
제갈량은 어떠했을까. 인기 있는 경국 「추풍오장원(秋風五丈原)」에서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맡은 바 소임을 다하려고 분투하는 그것 하나로 관객의 눈시울을 적신다. 그의 사신이 적장 사마의에게 설명하는 마지막 집무 태도는 옷깃을 여미게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시고 밤늦게까지 일하시지요. 편십(鞭十 : 곤장 10대에 해당하는 평범한 형벌)까지 친히 살피십니다. 음식은 하루 몇 되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소식하십니다.” 사마의는 이 말을 듣고 ‘공명(제갈량의 호)이 매일 하는 일에 비해 먹는 양이 그렇게 적다니 어찌 건강을 유지하겠는가. 오래 지탱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짐작하지만 제갈량이 국궁진력하는데 대해 남다른 경의를 표하고 있다.
나중에 밝혀진 바이지만 제갈량은 일찍이 재산 상태를 신고한 일이 있다. “성도 교외에 뽕나무 8백 그루가 있고 메마른 땅이지만 열 다섯 경(頃)의 밭이 있으니 자제들이 입고 먹기에는 스스로 넉넉합니다. 신(臣)이 밖에서 임무를 받을 때는 따로 조달할 것이 없이 제 한 몸 먹고 입는 것 모두 관부(官府)에 의지했으므로 따로 치생(治生 : 생활의 방도를 차림)하여 척촌(尺寸 : 아주 적은 양)을 보태지 않았습니다.” 일국의 모든 실권을 손에 쥐고 있는 정승의 이런 청렴한 모습에서 중국인들은 진정한 목민(牧民)의 전형을 보고 있는 것이다. 최근 보시라이라는 희대의 정상배가 제갈량이 이상을 불태웠던 그 촉 땅에서 온갖 부정부패에 매관매직하여 우리 돈으로 1조4천여억 원을 해외로 불법 반출했다가 구속되었다는 보도다. 그에 뒤질세라 존경하는 인물난에 이순신 이름을 수없이 써먹었던 정치인·언론인·교육계 인사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땀 흘려 일하지 않고 편안히 앉아 뒷돈이나 챙기면서 ‘배운 사람’으로 득세하는 그들을 보고 이순신과 제갈량이 뭐라고 할까. ‘지하에서도 차마 눈을 감지 못하고(不瞑於地下)’ 나즉이 한마디 하실 것 같다. ‘제발 사라지거라.’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2012년 05월 15일 (화)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