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중국은 세계 리더국가를 포기했는가?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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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2. 6.12)
나채훈의 중국산책 /
중국은 세계 리더국가를 포기했는가?
만리장성이 또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중국 국가문물국(우리의 문화재청에 해당)은 고고학 조사 결과 만리장성의 총 길이가 2만1196㎞로 드러났다고 하면서 서북으로 신강위구르자치구, 동쪽으로는 헤이룽강성(黑龍江省)까지 연장해 발표했다. 만리장성의 길이는 원래 명대(明代)를 기준으로 고비사막 자위관(嘉山+谷關)에서 산하이관(山海關)까지 6352㎞가 정설이었다. 이를 지난 2009년에 압록강변의 단둥(丹東) 후산장성(虎山長城)이 동쪽 끝이라며 2천500㎞를 늘리더니 이번에는 아예 2만여㎞로 기존의 길이에서 3배 이상 연장한 것이다(본 칼럼 2011년 11월 29일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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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중국이 인류가 건축한 최장물 만리장성을 역사적 구심점으로 세계에 전파함으로써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민족 단결을 확고히 하려는 의도로 보이는데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역사의 왜곡을 서슴지 않겠다는 정치적 목적이다. 특히 만리장성 늘리기를 시도한 동쪽 지역은 우리 고대사의 숨결이 흐르는 곳이란 점에서 중국의 동북공정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던 중국 동북 일대가 고대부터 중국의 영토였음을 주장하려는 속셈인 것이다.
더하여 신강위구르자치구라 불리는 땅, 즉 천산 북부의 중가르 분지와 천산 남부 타클라마칸 사막 일대 타림분지는 투르크 민족의 땅이었음을 고대사가 아니라 17세기 중반의 청사(淸史)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1681년 중국 남부를 강타했던 삼번(三藩)의 난을 진압한 강희제는 북쪽 몽골 세력의 위협을 뿌리째 뽑겠다며 원정에 나섰고, 1697년 중가르의 수령 갈단을 죽음으로 몰아감으로써 그의 일차적인 목적은 달성되었다. 그의 손자 건륭제는 1755~58년까지 계속된 서몽골 원정에서 그야말로 이민족 말살이라는 잔혹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모조리 죽여라.”, “젊은 녀석들을 골라서 죽여라”는 명령으로 ‘60만 중가르 인민 가운데 4할은 천연두로 죽고, 2할은 달아나고, 3할은 학살을 당했으며, 여자들과 아이들은 노예로 팔려 나갔다.’<魏源 聖武記> 이리하여 천산 북부에서 알타이까지 서몽골 유목민은 완전히 사라졌고, 황무지가 된 그 땅에는 카자흐와 위구르 등의 다른 민족들로 채워졌다. 연이어서 타림분지 일대의 투르크 민족들이 공격을 당했고 오아시스에 고립된 도시들은 차례로 무너졌다. 청군(淸軍)은 파미르고원에 막히고서야 진격을 멈추었다. 그래서 ‘새로 얻은 땅[新疆]’이 탄생했던 것이다.
이번 발표를 보도한 법제만보(法制晩報)는 국가문물국 관계자가 “2009년 만리장성 길이를 공표한 이후 문물국에서 진한(秦漢) 시대와 기타 시대의 만리장성 자원 조사를 벌여왔다”고 전하고 있는데 그들 스스로 새로 얻은 ‘신강’ 땅이 진한의 역사와 무관함은 재언할 여지조차 없다.
흑룡강과 길림의 넓은 토지와 내몽골의 동부 초원, 오늘날 동북으로 불리는 이 땅들 역시 동몽골의 여러 부(部)와 여진족의 무대였음도 마찬가지다. 영토 국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만주인들이 보여준 무자비함은 동북아시아 역사에서 가장 잔혹한 이민족 멸망사를 장식한다는 것은 오래 전에 증명된 바다. 이런 역사를 외면하면서 마치 오랜 세월 묻혀 있었던 한족(漢族)의 유적들을 차츰 발굴하여 만리장성의 본래 모습을 회복해 나가고 있는 듯이 강변하는 것은 ‘통일적 다민족국가로의 추구라는 목적’에서 모든 지역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것인데 과거사를 온통 현재의 관점으로 만드는 중국의 역사인식은 극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역사 왜곡은 또한 학술 영역에서만 머무는 사안이 아니라 일제의 침략사를 부인하는 일본의 자세와 함께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협력을 가로막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만리장성으로 상징되는 중국의 굴기(屈起)는커녕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영토 분쟁에서도 반중(反中) 감정만 자극할 위험이 크다.
만리장성 늘리기가 고구려·발해사를 왜곡하고 네이멍구에서는 원사(元史)를, 중앙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는 서역사(西域史)를 자국 역사로 하는 상황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견해도 있는데 아무튼 새로운 중국 만들기에 혈안이 된 나머지 개방 이후 경제적 부를 누리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역사적 진실까지 외면한다면 중국은 G2로서 세계의 리더국이 되기보다 패권국가로서 동북아의 모든 나라로부터 외면당할 위험에 직면하게 되지 않을까.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2012년 06월 12일 (화)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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