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선우(先憂)’하고 ‘후락(後樂)’ 한다면…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2. 6. 5)
나채훈의 중국산책 /
‘선우(先憂)’하고 ‘후락(後樂)’ 한다면…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19대 국회가 개원했으나 정당과 정치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여당은 일대 쇄신을 한다면서 당명을 바꾸고 정강정책을 대폭 손질하여 원내 제1당이 되었으나 한국 정당사의 고질병인 사당화(私黨化)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야당 역시 시민단체에 노동계까지 끌어안아 유권자의 기대를 한껏 부풀렸으나 연이은 자살골에 다수당이 되지 못한 아픔과 실책에 대해 깊은 성찰 없이 ‘담합이냐 아니냐’ 하는 경선 공학에 매몰되어 있다. 진보 계열은 더 참혹하다. 비례대표 경선 과정을 둘러싸고 당내 계파 간에 죽기살기식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데다 종북이니 주사파니 하는 실망감을 짙게 드리우고 있다. 결국 여야의 정치지도력은 추락하고 있으며 획기적으로 국면을 전환시킬 호재나 구원투수의 등장은 당분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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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위에서 벗어난 정당이나 비대위로 꾸려가는 정당이나 진보든 보수든 겨우 찾아낸 해법이 ‘관리형’이니 ‘화합형’이니 ‘온건무난형’ 정도의 인물 찾기다. 이래서는 국민에게 더 이상의 희망은 접어달라는 신호나 다름없다. 물론 경선 흥행을 통해 어느 정도 관심을 끌어 대선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은 봐줄 만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방법론에 불과할 뿐 본질이 아니지 않은가. 총선을 거치고 대선을 맞이하는 그들만의 밥상은 진수성찬일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유권자의 밥상은 기대 이하의 초라한 형색이다. 지구촌의 당당한 산업화된 민주국가, 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독립국 가운데 가장 성공한 국가로 자타가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21세기 도약을 맞이하는 정치 현실 자체가 안타깝다는 말이다.
안철수 현상만 해도 그렇다. 산중에 칩거하신 스님의 법문에 버금가는 ‘말씀’을 툭툭 던져 내놓고 있으나 그 말씀은 지극히 추상적이거나 단편적이다. 오죽 하면 ‘구름당’ 당수라는 별칭까지 붙었을까. 기성의 정치 지도력에 대한 실망 때문에 형성된 막연한 기대감에다 그의 때 묻지 않은 정치 무경력이 호감을 갖게 하지만 난마처럼 얽혀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요구되는 정책 지식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는지, 위기관리에 필요한 설득력과 결단력은 과연 어느 수준인지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이렇다 보니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냐는 식의 여론이 일어나는 모양새인데 그건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하고 국민적 불안을 가중시킬 뿐이다. 비틀거리던 청말(淸末), 정치가 증국번(曾國藩)은 일찍이 ‘몰락하는 조짐’ 세 가지를 들어 경고했었다. 첫째는 무엇이건 흑백을 정확히 가릴 수 없게 되는 것, 둘째는 선량한 인물들이 갈수록 조심스러워지는데 하찮은 녀석들은 더욱 설쳐대는 것, 셋째는 문제가 심각할수록 이것도 지당한 일이고 저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식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 일반화되는 것이라 했다. 흑백을 가릴 수 없고, 하찮은 인간이 더욱 설쳐대고,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 일반화되는 것은 왜 그럴까. 원리원칙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도자가 원리원칙이 없으면 이런 현상은 불 보듯 뻔하다. 선거공학으로 선출된 지도자는 국가 장래에 독약이나 다름없는 결과를 내던지고 떠날 것이 자명하다. 옛말에 ‘무력(武力)으로 천하를 차지할 수는 있어도 무력으로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했다. 원칙 없이 흥행 효과에 기대고 선거 경쟁력으로 당선증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통치는 수준 미달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지난 4년 우리가 체험한 진실 아닌가.
‘우리 헌법이 누더기가 되고 우리 정당이 패거리 수준’으로 전락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동안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성공을 거둔 것은 결코 누더기 헌법과 패거리 정당 덕분이 아니었음은 자명하다. 중국 후난성 웨양(岳陽) 둥팅호에 악양루(岳陽樓)라는 성루가 있다. 당대(唐代)에 세워지고 송대(宋代)에 보수할 때 그곳에 범중엄(范仲淹 : 송대의 정치인이자 뛰어난 문학가이며 교육자로 근검절약하며 일생을 산 명신)이 쓴 악양루기(岳陽樓記)가 걸려 있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어 유명하다.
- 천하의 근심을 먼저 걱정하고(先天下之憂而憂), 천하의 즐거움은 나중에 즐긴다(後天下之樂而樂).
정당에 몸을 담고 있거나, 향후 정치지도자를 꿈꾸는 이들은 물론 지금 대권을 향해 의지를 불태우는 분들 모두가 곰곰 되씹어 생각해 볼 내용이 아닌가 싶다. 자신도 구하고 나라를 위해서도 말이다.
2012년 06월 05일 (화)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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