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용서를 빌면 또 넘어가야 하나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2. 7.17)
나채훈의 중국산책 /
용서를 빌면 또 넘어가야 하나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현 정권에서 ‘모든 일은 형님으로 통한다(萬事兄通)’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실질적인 2인자 지위를 누려온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솔로몬저축은행과 미래저축은행 회장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죄목으로 감방 신세가 됐다. 구속되기 전 그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법원에 들어서다가 부실 저축은행 피해자들로부터 “이상득 도둑놈, 내 돈 내놔라”는 울분 섞인 욕설과 넥타이를 붙잡히고 계란 세례를 받기도 했다. 이를 두고 ‘물러날 때를 받아들이지 못해 스스로 만든 결말’이라는 평이 우세한 모양인데 그것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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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힘겹게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서는 “어떻게 저런 사람을 통제하지 못했느냐”며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저런 사람들’이 누구인가? 시장 좌판에서 생선 팔고 채소 팔아 어렵게 한 푼 두 푼 모아 저축은행에 맡겼다가 피해를 입고 몇 푼이라도 건지겠다며 울부짖는 이 땅의 서민들이다. 수억 원을 몇 차례나 떡고물처럼 챙긴 그가 백 번 천 번 사죄해도 시원찮을 판에 ‘저런 사람들’이라고 무시하는 그 발언 밑바닥에는 그야말로 오만과 특권의식이 풀풀 풍긴다. 이 정권이 출발부터 어떤 의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서민들에 대해 어떻게 여겼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열자(列子)』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송(宋)나라 때 누더기 베옷으로 어렵게 겨울을 지내는 가난한 백성이 있었다. 마침내 추운 겨울이 지나고 들에 나가서 일을 하는데 누더기 걸친 등에 봄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 쬐었다. 세상에 고대광실이나 두툼한 속옷, 모피 옷이 있는 줄 모르는 그 백성은 옆에 있는 아내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등에 내리쬐는 따사로운 봄볕을 나라님에게 바치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서 작디작은 충성을 헌훤(獻暄)이라 부르는 것이 유래된다. 누더기 베옷의 등에 내리쬐는 작은 따스함을 나라에 바치고자 하는 그 마음을 저소득층의 저축으로 빗대어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설명한 사람이 바로 20년 전 한중 국교를 연 덩샤오핑이다.
저축과 가난한 서민들의 마음을 연결시키는 리더십과 저축은행으로부터 수억 원의 뇌물을 거리낌 없이 받고 서민들의 울분을 ‘저런 사람들’로 깔보는 오만과 특권의식. 이러고는 공정한 사회 운운하는 권력의 뻔뻔함은 정말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어려운 이들에게 재물을 베풀어 공덕을 쌓는 행위를 불교에서는 보시(布施)라 하여 권장하고 있는데 겉은 보시의 탈을 쓰고 있으되 속은 엉뚱한 데다 두는 사이비 보시 일곱 가지[七不布施]는 해서는 안 될 악행으로 꼽히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저축은행 비리에 연관된 자들의 행태를 어쩜 그리도 족집게처럼 지적하고 있는지 새삼스럽다. 보시를 뇌물이나 수뢰로 대치하면 이 정권 2인자의 모습과 진면목을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칠불보시의 첫째는 수지시(隨至施)라 한다. 저쪽에서 집요하게 요구하므로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가져다 바치는 보시를 말한다. 두 번째는 포외시(怖畏施)다. 미리 알아서 바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까 염려되고 불안하여 하는 수 없이 싸다가 바치는 보시다. 세 번째는 보은시(報恩施)다. 예전에 조금 덕본 것을 갚는다는 명분으로 꽤 많이 바치는 보시다. 네 번째는 구보시(求報施)다. 어떤 대가를 은연중에 노려서 가져다 바치는 보시다. 다섯 번째는 습선시(習先施), 전부터 관례가 돼 있고 남들도 모두 그렇게 하기에 따라서 하는 일종의 예의상 보시다. 여섯 번째는 희천시(希天施), 어떻게든 잘 보여서 장차 큰 이익을 보려는 일종의 보험형 보시다. 일곱째는 요명시(要名施)라 하여 자신의 명성을 사방에 과시하려고 갖다 바치는 보시다. 이 일곱 가지 행태는 마치 길에 떨어져 있는 새끼줄 한 토막을 주워 집으로 돌아왔더니 황소 한 마리가 따라 왔다고 둘러대는 소도둑의 변명과 다를 바 없는 뒷이야기를 남긴다. 그러니까 ‘앞으로 저축은행 비리를 눈감아 주고 관련 업무에서 잘 봐 달라’는 의도가 없는 그저 보시였다는 투다.
저축은행의 부정한 돈을 수수한 ‘권력형 비리’를 수사한다는 검찰이나 그 돈이 대선에 쓰였을 것이므로 대선자금 수사를 하라는 야당의 공세도 그렇지만 이번 사건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는 한 마디로 우리의 미래를 암담하게 한다는데 있다. 대선 정국에서 국민의 용서나 빌 일이 결코 아니다.
2012년 07월 17일 (화)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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