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친애하는 여러분…‘老百姓們’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2. 6.26)
나채훈의 중국산책 /
친애하는 여러분…‘老百姓們’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공식문서나 행사에서 ‘노인(老人)’이란 말을 쓰지 않겠다고 서울시가 정했다 한다. 한창 의욕을 갖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거나 청장년 못지않게 ‘팔팔한’ 활동력으로 살아가는 분들에게 늙을 ‘노(老)’를 붙여 호칭하는 것이 마땅치 않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노소(老少)의 차별을 없애는 에이지즘(Agism)운동의 연대가 언제 적인데 지금 와서… 하며 혀를 차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하여 서울시는 시민들을 상대로 ‘노인’을 대체할 만한 말을 공모해서 우선 노인복지관, 경로당 같은 이름부터 바꾸기로 했다.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연세든 분들의 호칭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아니 달라져야 마땅하다. 1백년 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40세가 안 되었다. 40세를 넘긴 것이 1935~1940년대인데 이때 40.9세였던 것이다. 그 당시의 65세라면 당연히 생리적·신체적 기능의 퇴화와 함께 개인의 자기 유지 기능과 사회적 역할이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평균 수명은 81세로 백수가 흔한 세상이 되었고 경로당에 가면 70세가 막내 노릇해야 하는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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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학자 J.W. 스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간의 육체적 능력은 43세를 고비로 하강한다. 그리고 50대 후반에 이르면 현저하게 저하된다. 하지만 정신 능력은 다르다. 기억력의 부문에서는 23세가 절정이고, 상상력의 경우는 30~40세, 창조력은 45~60세, 추상력과 종합력·판단력은 45~70세까지가 절정이라 했다. 이 통계도 몇 십 년 전의 것이고 보면 지금은 해당 연령을 상향 조정해야 마땅하리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아님, 스틸의 수치에 맞추면 현재 우리나라 실정에 있어 정신력의 손실은 상당하다. 60세까지 지속되는 창조력에서의 손실은 물론 70세까지 지속되는 추상력·종합력·판단력의 손실은 너무나 엄청나지 않은가.
E.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에 보면 불멸의 대제국처럼 보이던 로마가 맥없이 무너진 큰 이유 가운데 하나로 ‘40대 이상을 쓸모없는 밥벌레’로 취급함으로써 정신력을 완전무결하게 사장시킨데 두고 있다. 임어당(林語堂)은 중국 문명의 저력을 평가하면서 ‘노인들의 체험적 능력과 지혜를 역사상 단 한 번도 사장시키지 않은데 있었다’고 했다.
맹자(孟子) 시대에 백발의 노인이 짐을 지고 거리를 걷는 것은 그 정치가 글러 먹었기 때문이라고까지 했었다. ‘노(老)’가 늙었다는 의미도 있지만 가장 높은 존칭이 되었던 점도 눈여겨보았으면 한다. 이를테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기량이 출중하고 됨됨이가 존경스러울 때 노제(老弟)라 불렀고, 사모님은 아무리 젊어도 노태태(老太太)라 해서 예의를 표했다. 노의(老醫)는 나이 많은 의사가 아니라 베테랑이란 의미이니 명의(名醫)와 동의어였고, 우리가 흔히 눈이 침침하거나 할 때 ‘노안(老眼)이 왔나?’ 하는 노안도 중국인들은 노련하고 숙달된 안목을 뜻하는 표현으로 사용했다. 한마디로 경로(敬老)의 천국이라 하겠지만 그 정신의 밑바닥에는 나이 든 분들의 정신력을 사장시키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욕이 담겨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연설을 할 때 반드시 첫머리에 등장하는 ‘친애하는 여러분’이 바로 노백성문(老百姓們) … 이었다.
우리의 전통에서도 수천 년 간 중국 못지않은 노인 우대 사회였다. 옛 마을에서 실천했던 향약(鄕約)을 보면 하루라도 빨리 늙고 싶을 정도로 나이 든 사람에게 깍듯한 예의범절을 다 바치고 있다. 또 오이를 거두거나 감을 따거나 별식(別食)이 생기면 그 수확의 10분지 1을 동네에 사는 60세 이상의 노인에게 골고루 드리게끔 의무화되어 있었다.
일본에서는 50대 장년(壯年)과 70대 노년(老年) 사이에 60대를 연륜과 경륜이 녹아든 결실의 시기라는 의미로 실년(實年)이라 하고, 스위스에서는 60세 생일에 빨간 스웨터를 선물하며 명칭을 빨간 스웨터라 부르고, 미국에서는 시니어시티즌(Senior Citizen) 또는 골든에이지(Golden Age), 프랑스에서는 제3세대라고 칭한다고 한다. 그 표현이 어떻든 우리가 흔히 쓰는 노망이니 노욕이나 노쇠니 하는 부정적 이미지를 담지 않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번 기회에 호칭의 공모에서 서울시가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하며 많은 이들의 연령에 대한 합리적 호응이 있었으면 한다.
2012년 06월 26일 (화)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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