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기상이변(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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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2. 6.22)
조우성의 미추홀-기상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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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살피는 일은 그 옛날 나라의 중요 과업이었다. 그럴밖에 없는 것이 가뭄이 들어 농사를 망치거나 큰비가 내려 백성들이 수해를 당하면 모두 임금이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탓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 한겨울에 눈이 오지 않으면 조정에선 기설제(祈雪祭)를 지냈다. 농사철에 비가 오지 않으면 임금이 머릴 풀고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 그때그때 임금으로서 도리를 다하며 백성들과 고통을 나누던 모습이다.
#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숙종 12년 8월 느닷없이 눈이 내려 제비와 참새가 얼어죽었고, 중종 25년 1월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눈 속에서 벌레들이 나와 기어다녀 사람들을 기겁하게 했다는 기상이변을 전하고 있다.
# 태종 5년 4월에도 각지에 우박과 눈비가 내렸다. 임금이 이에 대해 자책(自責)을 하니 예조판서 이문화(李文和)가 "성상께서 날마다 삼가심이 마땅합니다."고 아뢰고 있다. 감히 임금께 '근신하라' 했던 것이다.
# 그렇다고 임금이 이문화를 탓했다는 기사는 없다. 여기서 우리는 민심이 천심이라는 통치관과 함께 하늘의 어지러움 즉 '천재지이(天災地異)마저도 자신의 부덕 탓으로 돌린 태종의 인간적인 면모를 읽게 된다.
# 본보는 20일자 1면에 "낮 최고 기온 33.8도, 열 받은 인천'이란 기사를 실었다. 1904년 인천측후소의 관측 이후 6월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는 내용이었다. 당분간 불볕더위가 계속되리라는 주간예보도 곁들였다.
# 그렇지 않아도 인천에 '열 받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마당에 하늘까지 불화살을 쏟아붓고 있으니 이 염천에 어쩌란 말인가 싶다. 그렇다고 저 옛날처럼 기우제를 지낼 일도 아니지만, 태종이 경천근민(敬天勤民)을 다하지 못했다며 스스로 신하들 앞에서 자신을 책망하던 모습이 오늘 왜 그리도 신선하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객원논설위원
2012년 06월 22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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