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빼지 못한 언어의 쇠말뚝들(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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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2. 8.16)
빼지 못한 언어의 쇠말뚝들
군국일본, 군함·장군이름 사용 위세 과시
/조우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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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군이 자랑했던 '송도함(松島艦)'이 침몰 28년 만에 부활한 것은 1936년이었다.
조선총독부가 인천의 '옥련리(玉蓮里)'를 일본식 동명인 '송도정(松島町)'으로 강제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이래 인천에는 '송도(松島)'란 섬이 존재한 적이 없으며, 육지 한 가운데의 지역을 '소나무 섬'이라 한 것은 얼토당토않은 명명 행위였던 것이다.
그것은 청일전쟁, 러일전쟁에 참전하여 승리한 '송도함'의 이름을 지명으로 사용함으로써 군국주의 일본이 위세를 한국인에게 과시하는 한편, 이 땅을 영구히 저들의 것으로 삼으로는 획책의 하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일제강점기 인천의 정명(町名)에 군함의 이름을 13개나 차용한 것이 그러한 정황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이에 대해 인천 최초의 국문신문인 대중일보는 1945년 12월23일 자에서 "8·15 해방 이후에도 아직 거리에는 가증스럽고 더러운 왜색이 일소되지 못하고 국치적인 정명(町名)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한심스러운 일이었다"고 개탄했다.
이에 "시 당국은 정명개정위원회를 조직하고 여러 차례 협의를 거쳐 '정(町)'을 '동(洞)'으로 고치고, '정목(丁目)'은 '가(街)'로 개칭하기로 하고 이를 1946년 1월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로서 인천은 비로소 우리 고유의 동명을 되찾게 됐는데, 명치정(明治町·王號)은 부개동, 대정정(大正町·王號)은 계산동, 소화정(昭和町·王號)은 부평동, 이등정(伊藤町·功臣名)은 구산동, 대도정(大島町·大將名)은 십정동, 운양정(雲揚町·軍艦名)은 백석동, 춘일정(春日町·軍艦名)은 시천동, 천간정(淺間町·軍艦名)은 가좌동, 천대전정(千代田町·軍艦名)은 가정동, 낭속정(浪速町·軍艦名)은 서창동, 송도정(松島町·軍艦名)은 옥련동 등으로 환원되었다.
일제강점기 35년은 이렇듯 땅이름의 수난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수년 전, 인천시 연수구 지명위원회가 이 같은 지명사의 실체도 모른 채 인천경제자유구역 내 신도시의 법정동 명칭을 '송도동(松島洞)'이라 부활시킨 것은 역사의 시계바늘을 되돌려 놓은 몽매한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1)역사상 인천광역시 관내에는 '송도'라는 이름의 섬이 없었고, (2)신도시 지역은 섬이 아닐 뿐 아니라, 소나무와도 무관하므로 '소나무 섬(松島)'일 수 없으며, (3)1936년 일제가 승전을 가려 군함 이름을 정명에 사용한 13개 예 가운데 하나이므로 이를 파기해야 마땅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천에는 아직도 군국주의 일본이 박아놓은 '언어의 쇠말뚝'이 녹이 슨 채 깊숙이 박혀 있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경정(京町)'에서 비롯된 '경동(京洞)', '유정(柳町)'을 그대로 답습한 '유동(柳洞)', '항정(港町)'에서 '정(町)' 자만 바꾼 '항동(港洞)' 등이 버젓이 쓰이고 있다.
일제의 잔재를 못 버린 도원동(桃源洞), 산삼동(三山洞)도 현존하고, 심지어는 일제강점기의 정명인 '도산정(桃山町)'을 그대로 살려 '도산(桃山)1길, 2길'로 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2년 08월 1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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