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명사수'김장미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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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2. 8. 8)
'명사수'김장미
/조우성의 미추홀( 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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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에 열린 제18회 도쿄올림픽 대회는 인상적이었다. 포스터가 압권이었다. 100m 달리기 출발점에서 공기를 가르며 스타트를 하고 있는 순간 포착의 모습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아직은 흑백 공존이 시대적 이슈가 되었던 때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작품은 역대 올림픽 포스터 가운데 최고의 디자인으로 평가받았는데 작가는 일본인 가메쿠라 유사쿠(龜倉雄策)였다. 그는 니콘 카메라, 메이지 초코렛 등 산업 디자이너로도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도쿄올림픽이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돼 있는 것은 '우리는 언제 올림픽을 열 수 있을까' 하는 선망과 함께 인천 출신인 장창선(張昌宣) 선수가 자유형 52㎏급에서 당당히 은메달을 목에 걸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 감격이라니! 인천은 감동의 도가니였다. 온 시민이 거리로 나와 지프차에 올라 시가행진을 하는 장 선수에게 뜨거운 갈채를 보냈던 것이다.
▶근대 야구와 축구의 도입지로서 인천체육이 한국 스포츠 발전에 기여해 온 바가 적지 않지만, 그 폭을 레슬링까지 확산시킨 쾌거였다. 그 후 탁구의 유승민, 태권도의 문대성 선수가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로 국위 선양을 했고, 이번 런던올림픽에 사격, 복싱, 요트, 하키, 핸드볼 종목으로 10명의 선수와 양궁, 펜싱에 2명의 코치가 참가하고 있는 것도 기억할 일이다. 그만큼 인천 체육은 저변을 탄탄하게 다져왔던 것이다.
▶특히 이번 제21회 런던 올림픽대회는 세계가 한국 스포츠에 놀란 사건으로 기록될 것 같다. 한국 축구가 종주국 영국의 콧대를 꺾었는가 하면, 전형적인 유럽 스포츠인 펜싱과 사격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 IT와 한류와 한국 스포츠의 시너지가 결코 우연히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하겠다.
▶더구나 인천 출신의 김장미 선수가 사격 25m 결선에서 중국의 천잉 선수를 제치고 금메달을 딴 것은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있는 인천으로서는 낭보 중의 낭보였다. 사격의 명문 부광중, 인천예일고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해야겠다. '약관의 명사수' 김장미 선수의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2014 아시안게임을 차질 없이 준비해야겠다.
/객원논설위원
2012년 08월 0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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