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역사는 러브레터(Love Letter)다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2. 9. 4)
나채훈의 중국산책 /
역사는 러브레터(Love Letter)다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일본의 정치9단들이 요즘 망발·망언·망동을 계속하고 있다. 망언의 수준은 끝 간 데가 없을 정도다. 처음 일본에서 정치9단이라고 하면 정경유착형의 노회한 정객(政客)을 지칭했었다. 이제 그들이 민족감정 유착형으로 모습을 바꿔 군국주의 역사에 편승하려는 모양인데 한마디로 낡은 정치인의 속 좁은 셈법일 뿐이다. 바둑의 9단에서 빌려온 정치9단의 경지는 원래 중국 양나라 무제 때 바둑 고수들의 실력에 순위를 매기는 일에서 비롯되었다. 역량에 따라 9단계로 분류하고 각각 이름을 붙였다. 가장 윗단계가 9단으로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서 ‘입신(入神)’이라 했던 것. 일본 정치의 입신들은 그동안 참으로 다양한 ‘말장난’을 해왔다. 우선 유감(遺憾)이란 표현부터 그랬다. 국제간에 빈도 높게 사용되는 유감이란 ‘마음속에 다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불만이나 원한’이다. 결국 못마땅하다는 의미다. 영어로 유감은 ①상대에게 사죄를 요구하는 regret ②사죄까지는 기대하지 않으나 항의에 가까운 express concern ③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든지 예의주시한다는 not indifference의 3단계가 관례라고 한다. 아무튼 유감은 상대에게 ‘네 잘못을 알라’는 공격용인데 동양에서는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나 그 잘못이 의도하지 않은 탓’에 일어났다는 투의 교활한 진상 흐리기가 된 것이다. 1980년대 이전까지 일본의 입신들은 이 용어를 즐겨 썼다. 한일 국교정상화,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 시에 히로히토 일왕과 당시 나카소네 총리가 유감이라 했었고, 우리는 대충 받아들이고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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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서 반성(反省)이란 표현이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본디 반성이란 ‘나의 과거를 돌아보고 행위 심술의 선악을 스스로에게 묻는다’는 의미일 텐데 대개는 잘못을 인정하는 전 단계요 사과한다는 의미로는 대단히 미흡하고 인색하다. 그래서 그들은 ‘깊은 반성’이니 ‘겸허하게 반성한다’느니 ‘통절한 반성’이니 하고 수식어를 달았고 사과(謝過)라고 옹색하지만 둘러대곤 했다. 예를 들어 1982년의 당시 미야자와 관방장관이 3.1운동을 ‘데모’, ‘폭동’으로, 그들의 침략 행위를 ‘진출’로 수정하려는 교과서 역사 왜곡에 대해 “근현대 역사를 다루면서 국제 이해의 상황에 필요한 배려를 할 것”이라고 했던 행위는 유감 표명 수준이었고, 1993년 고노 관방장관이 정신대(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군과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었다”고 밝히면서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올린다”고 했었다. 진일보했던 것일까? 1995년에 무라야마 당시 총리가 전쟁 종식 50주년을 맞아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면서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었다. 이런 정도가 그나마 일본의 군국주의 팽창 야욕에 역사적 피해를 입은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사과한 것인데 당시에도 꽤 많은 언론이 ‘새로울 것이 없는 상투적이고 계산된 문구의 나열’이라고 일침을 가했었다.
그랬던 그들 일본의 정치9단들이 말 바꾸기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역사 부정의 망언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노다 총리는 “한국과 중국은 무슨 문제만 생기면 군 위안부 문제를 들고 나와 일본의 사죄를 요구한다”며 불쾌하다는 듯이 떠들었고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은 “고노 담화(1993년의 사과와 반성)는 최악”이라며 군 위안부 강제 동원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자신들의 과거 역사 자체를 부정하는 정도에 따라 바둑처럼 9단계로 나누는 정치 급수가 정해지는 것일까. 일본의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해석(?)도 나오지만 그건 그쪽 사정일 뿐이고 동북아 역사에서 일본인들의 오점은 더욱 선명해질 뿐이라는 사실을 왜 간과하는 것인가?
러브레터는 감성의 호소문이다. 물론 그 속에는 이성적 판단이 문맥을 이루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의 심중을 울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딱지 맞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그럴진대 역사를 날조하고 철저히 부정하면서 이웃 나라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한중 연합 해병대라도 보내 도쿄상륙작전을 해달라고 자극하는 것인가. 『대장엄론경』에 나오는 추녀 이야기를 떠올리기 바란다. 물에 비친 미녀의 얼굴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여 이 정도 미모로 하녀 생활은 하지 않겠다며 물독을 깼던 그 우(愚)를 범하지 말라고.
2012년 09월 04일 (화)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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