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기고]/기산 선생과의 아름다운 인연, 김양수 선생을 보내며(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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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24.10.21)
[기고] 기산 선생과의 아름다운 인연, 김양수 선생을 보내며
/조우성 시인·전 인천시립박물관장
▲ 조우성 시인·전 인천시립박물관장
기산(耆山), 선생님!
기산 선생님, 오늘 청명한 가을 날 아침. 느닷없는 선생님의 부음을 듣습니다. 좀더 오래오래 사시면서 후학들에게 나누어 주실 그 많은 이야기를 다 끝내시지 못하고 홀홀 떠나시었다니 세상이 한껏 쓸쓸해지고, 저녁 바람도 스산하게 느껴집니다.
언제였던가요? 반세기 전 어느 날, 예총회관이 있던 신생동 인천공보관 사무실에서 문협 인천지부장을 맡고 계셨던 선생님을 처음 뵈었죠. 선생님께서 이제 문단에 들어왔으니 지부 사무국장을 맡아달라고 하셨던 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는 영문도 모른 채 문협의 식구가 되었고, 선생님을 따라 길을 걸어왔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뵈었을 때는 이미 평론가로서의 명성뿐만이 아니라 지역지의 논설위원으로서 예리한 필봉을 날리셨고, 85년도인가요?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을 맡으시면서는 지역의 여러 후배들을 이끌어 주시었고, 저를 지역사회 어른들께 인사 드리도록 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한국예총의 사무국장으로서, 유네스코협회 초대 인천지부장으로서 인천은 물론 이 나라의 문화 발전에 지대한 공을 남기셔서 2000년에는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받으시기도 하셨죠. 그날 미술평론가 석남 선생님, 새얼재단의 해관 선생님 등을 모시고 훈훈한 축하의 자리를 마련했던 일도 이제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일찍이 소년 시절부터 문학에 꿈을 두시고, 인천중학 교사이셨던 시인 조병화 선생님을 사사하시면서 장년기에는 편운 선생의 시집을 만들어 드리고, 선생님이 작고하신 뒤에는 '편운문학상'의 운영위원장을 하시는 등 평생을 이어간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인연은 세상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또한 1950년 11월 전시 중에는 인천문총구국대에 입대하시어 종군 활동을 펼치셨고, 종전 후인 1956년 인천 태생으로는 최초로 현대문학에 '랭보론'이 추천이 되시어 문단에 등단하신 후 우리나라 문학평론가 1세대의 선두주자로서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시어 문단 내외에서 큰 갈채를 받으셨었습니다.
제가 잊지 못할 일은 인천시 시사편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계셨던 박광성 교수님과 같이 지역사 연구에도 몰입하시어 후에 박 교수님에 이어 시사 편찬에 열정을 바치셨던 겁니다. 더불어 시 문화재위원으로서도 활동하신 선생님은 그야말로 '인천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진정한 '인천인'이셨습니다.
문인으로서, 언론인으로서, 향토사학자로서 그리고 문화운동가로서 선생님은 세상의 부귀영화와는 거리가 먼 호젓한 외길을 담담히 걸으시면서 인천 지역문화의 바탕이 되는 여러 분야의 텃밭을 일구어주셨다고 저희들은 생각합니다. 후배들로서는 선생님이 남겨 주신 후광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기산 선생님, 이제 생전에 교분을 나누셨던 어르신들과 만나 뵈오리라 마음에 굳이 위로로 삼으며, 늘 걱정하시고, 손길 닿는 대로 보살펴 주신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더욱 더 알찬 열매로 키워 나아갈 것을 저희 후배들은 다짐합니다.
회자정리-그것이 어김없는 인간사의 이치라지만, 슬픔 또한 인지상정입니다. 선생님, 마지막 인사를 이렇게 여쭙습니다. 그동안 정말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부디 영면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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