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산자수려(山紫水麗)한 산하(山河)를 유산으로(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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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24. 9.26)
산자수려(山紫水麗)한 산하(山河)를 유산으로
/원현린 주필(主筆)
원현린 주필
요 며칠 사이 중남부 지방에 쏟아진 폭우로 도로가 끊기고, 산이 무너지고, 농경지가 물에 잠겨 수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들녘에서는 아직 가을걷이가 끝나지 않았다. 농민들이 애써 가꾼 농작물을 망쳤다.
농작물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는 소식에서 국민들은 안쓰러운 마음을 달래기 어렵다. 물에 잠긴 농작물을 바라보는 농민을 비롯한 온 국민들은 하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이 아프다. 잘못이 없는데도 자신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형벌이 가해지자 하늘을 향해 울부짖던 그 옛날 사마천(司馬遷)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하늘의 도는 과연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天道 是耶非耶)"
하지만 언제까지 하늘만을 탓할 수는 없다. 해마다 반복되는 수해다. 산과 물을 잘 다스려서 가뭄과 홍수 따위의 재해를 미리 막는 일이 치산치수(治山治水)다. 숱한 물난리를 겪고도 조금도 나아지는 것이 없는 정부 당국이다. 전년도에 수해를 당한 지점에서 또다시 물난리를 겪곤 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만큼 크게 어리석은 일은 없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도 이제 성장을 거듭해 경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환경 따위는 무시하고 달려온 우리다. 환경은 한번 해치면 되돌려 놓는 데 수많은 세월과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과거 성장 일변도로 나아가던 시절, 환경 파괴 운운하는 언론인들이 고초를 겪는 시절도 있었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상기후 변화에 대한 연구는 환경론자들의 몫만이 아니다. 인류 모두의 현안이다.
날씨가 매우 추울 때 극한추위라는 말은 들었어도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해서 ‘극한호우(極限豪雨)’라는 표현은 여간해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기상학 용어로 1시간의 누적 강수량이 50㎜ 이상이면서 3시간 누적 강수량이 90㎜ 이상일 때 또는 1시간의 누적 강수량이 72㎜ 이상일 때를 말한다. 한 시간당 30㎜ 이상이나 하루에 80㎜ 이상 비가 내릴 때 말하는 집중호우보다 더 강한 표현의 비다.
이 용어가 근자 들어 이상기후가 잦아지면서 왕왕 들려온다. 잦은 기후변화는 지상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쳐 인류의 삶마저도 크게 변화시킨다.
비, 구름, 바람 등 자연의 흐름이 변화무쌍하게 바뀌곤 한다. 하늘의 경고일지도 모르는데 우리만이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초윤장산(礎潤張傘)이라 했다. 주춧돌이 촉촉이 젖어들면 우산을 준비하라는 말이다. 모든 사건은 발생하기 전 일정한 조짐을 보인다. 이러한 징후를 사전에 파악, 분석하고 대비하면 큰 화를 면할 수 있다는 하나의 경세어(警世語)다.
우리가 주지하는 1:29:300의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도 같은 의미라 하겠다. 큰 재난은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발생하기 전에는 그와 관련한 작은 사건들이 29번 발생했고, 그 전에도 이미 300번의 미미한 조짐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올여름이 그래도 가장 덜 더운 날씨로 기록될지 모른다고. 앞으로는 해마다 더위가 더해 갈 모양이라고.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자연환경은 파괴되고, 산업 발달이라는 이름 하에 극지방의 얼음까지 녹이고 있으니 지나친 표현은 아닐 성싶다.
늦었다고 할 때가 빠르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헌법 전문에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한다"고 했다. 이어 동법 제3조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선언했다.
오염되고 망가진 영토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잘 가꿔 산자수려(山紫水麗)한 산하(山河)를 유산으로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202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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