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기고]/상상 플랫폼, 무엇을 상상 했나(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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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24. 7.29)
[기고] 상상 플랫폼, 무엇을 상상 했나
/조우성 전 인천시립박물관장
▲ 조우성 전 인천시립박물관장
상상은 판타지와는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판타지가 현실을 넘어선 분방한 꿈의 세계라면, 상상은 미래를 내보는 힘을 지닌 정신의 발현이다.
한 세기 전,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이 초대형 대포로 인간이 탑승한 위성 탄환을 발사하면 달나라에 갈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은 상상이었고, 그 후 인간은 달에 발을 내디뎠다.
'상상'에 '플랫폼'이라는 입출 거점을 더한 '상상 플랫폼'이 최근 탄생했다.
이름 그대로 이 공간은 상상의 외연을 확장, 심화시키는 인천 특유의 미래지향적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으나 누구나 공감하고 동참할 수 있는 희망찬 지역 비전을 이곳에서 나누리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개막식 날, 밀물이 출렁대며 와 닿는 월미도 앞 부둣가. 전면을 유리로 장식한 상상 플랫폼 건물 상단에는 '스토리지 인천 베이커리 & 카페 부르어리'라는 낯선 글자가 부착돼 있었다.
스토리지? 부르어리? 이곳이 어떠한 공간인가를 상상하라는 것인가. 첫 시각적 이미지부터 선뜻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미로에 들어서는 느낌으로 문을 여니 널찍한 실내 공간이 마중 나온다. 오른쪽에는 인천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마루 좌석이 산뜻해 보인다.
그러나 미디어 아트 전시관 등 여러 곳이 공사 중이어서 4층 '스토리지 인천'으로 향한다. 검색해 보니 '스토리지'는 창고, '부르어리'는 맥주 양조장이란다.
그래서인가, 맨 앞쪽이 '시맨스 클럽'이라는 이름의 '맥주 존(Zone)'이다. 1960년대 부둣가에 있던 미 해군 식당과 외항선 상대 일반 주점의 이름을 차용한 이 공간을 “개항장 컨셉으로 설치했다”는 설명은 궁색해 보였다.
그다음은 '청국지계존'이 아니라 굳이 '화상지계존'이라 했고, 이어 '일본지계존', '각국지계존'이 연출되어 있었다.
'존'마다 각각의 '지계비(地界碑)'를 FRP(강화플라스틱)로 엉성하게 설치해 놓았는데 구석에는 느닷없는 '조선지계(朝鮮地界)' 비도 서 있었다.
조계(租界) 자체가 강대국들이 힘없는 조선 정부를 윽박질러 차지한 치외법권 지역이었는데, 그 국권침탈의 현장이 무슨 자랑거리라고 경계를 나타내는 비를 곳곳에 세워놨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머지 공간을 돌아보니 해석하기 난감한 것들이 눈에 띄었다.
일본이 전 세계에 대놓고 일본인 이즈미요스케(和泉要助)가 발명했다는 인력거를 미국 선교사가 만들었다고 하고, 우체국 효시를 1884년 '우정총국 인천분국'이 아니라 1923년도의 '인천우체국'이라면서 우체통도 일본의 현 우정 표지가 들어간 것을 전시 중이다.
심지어는 경인선 초기 증기관차 모형에 '1883년 Jemulpo-Seoul'이라고 표기해 사정을 모르는 관람객들에게 경인선 개통이 1883년에 이루어진 것처럼 착각하게 하거나, 개항기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신문물은 찾아볼 수 없는 반면 그와는 상관없는 전후의 복고풍 가게와 기준이 모호한 '개항장 인물' 등이 급조된 공간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더구나 '모나리자 전시'에 이르면, 과연 상상 플랫폼이 제시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다.
제국주의적 잔영이나 키치적 복고 등에서는 인천 특유의 독자적인 문화를 읽을 수가 없었다.
향후 상상 플랫폼이 견실한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하려면 그야말로 인천적인 미래지향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202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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