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출석부
길영희 선생님의 인고 사랑
본문
총동창회 선배님 그리고 동문 여러분!
오늘은 특별히 인천 교육의 선구자이셨던 길영희 선생님이 보여 주신 인고 사랑의 이야기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길영희 선생님은 제물포고등학교의 교장을 지낸 분입니다. 1950. 6. 20. 학제개편에 따라 인천중학교 병설로 인천고등학교를 신설하고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 94명을 입학시켰으나 6. 25. 발발로 동시에 중단되고 6. 26. 등교한 학생들에게 마지막 훈화를 하시는데 그 내용은 "오늘 휴교를 하니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행동하라. 그러나 꼭 한가지 부탁할 것은 차후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라도 서로 죽이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복 후에 이미 1950. 6. 20. 승인했던 인중 병설 인천고등학교 인가를 백지화 하고 인천상업학교에 인가 승인이 결정됨으로서, 인천중학교는 3년제 도립 중학교로 새로 인가하고, 인천상업학교 주도로 별도 공립 인천고등학교가 설립되었던 것인데, 이것이 우리 인천고등학교가 인천상업학교의 후신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고, 1954. 7. 7. 제물포고등학교 설립인가가 나오게 됨으로서 인천중학교 인천고등학교가 아니라 인천중학교 제물포고등학교, 그리고 상인천중학교 인천고등학교로 양립되는 시대를 가져오게 하였던 것입니다.
한편 길영희 선생님은 우리 인천 교육계의 탁월한 지도자로서 존경받는 분이셨습니다. 길영희 선생님은 1954. 12. 2. 교장서리로 취임하셨다가 1956. 3. 27. 제물포 고등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셨으며, 인중 제고의 교장을 겸임하셨던 분입니다.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고, 학식은 사회의 등불이라는 일념하에 인중 제고의 교훈으로 하여 무감독제시험제도를 실시하는 등으로 허위의 악습을 끊는 혁명적 교육실험을 단행하신 것은 유명한 일화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길영희 선생님은 인천고등학교의 이승우 영어선생님이 1957년 서울로 전근을 가려는 소식을 듣고 인고를 떠나지 마시라는 뜻의 편지를 써서 보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으며, 이 자료는 심재갑 선생님께서 저에게 보내오셨습니다. 해서 이 편지를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바이오니, 인천교육의 산 역사이신 길영희 선생님의 사상과 활동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전문 옮겨 싣고자 합니다.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당시 길영희 선생님이 보내신 편지 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2019. 4. 15.
인천고등학교 총동창회 회장 이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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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가 있어야 큰다. - 인고를 떠나지 마시오”
낭일(曩日)에 주신 이군의 친필은 한 없이 나를 기쁘게 하였습니다. 이군이 이같이 지성에 넘치는 간곡한 편지를 주실 것을 나는 전연 예상치 못하였든 까닭입니다. 우리는 예상외의 기쁜 일을 당할 때에는 그 기쁨도 에상외로 더 크다는 것이 상정인 것 같습니다.
강한 상대방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의 발전에 큰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소련이 미국이라는 상대방 즉 적수를 가진 고로 이것이 그 나라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한 요인이 되었다고 고찰할 수 있겠지요. 이런 일은 국내는 물론 친형제지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인고에서 야구를 잘 하니까 동산이란 적수가 생겨서 한국고등학교 야구는 인천에서 패권을 잡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제 인고나 동산은 두 학교중에서 어느 편이나 한 편이 쇠약하게 되면 야구의 패권은 경쟁이 막심한 다른 도시로 넘어갈 것이라고 봅니다.
인천에서 제물포 고교가 새로 생겨난 후 이 학교의 힘찬 발전을 위하여는 인고라는 강한 적수가 힘찬 주먹을 불끈 쥐고 항상 제고 앞에 대치하여 있다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인고가 맹호가 되어주시기를 은연히 기대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거년에 이원옥 군이 인고를 떠나는 것을 보고 애석 부금이라서 금년에 이승우군이 또 다시 인고에서 사퇴하는 것을 보니 인천을 위하야 또는 인고와 제고를 위하야 실로 적막한 감정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치 않어도 한국문화는 정수가 모두 서울로 서울로 집결되여서 지방은 빈혈상태를 면치 못하는 지경인데 이렇게까지 격김사여 가다는 지방은 마비상태를 면키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람이 있어 수족에는 피가 돌지 못하고 모든 피가 심장에만 집결된다면 그 생명이 유지되기 어려움과 같이 일국의 전문화가 서울로만 몰리고 지방은 빈혈 내지 마비상내로 돌아간다면 그 국가의 명맥이 불길하다는 것을 예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어도 서울이란 땅에는 인재가 많은 터인데 왜 인천에 몇 사람 되지 안는 고등학교 교사까지 다 서울로 몰려 간단 말입니까? 이런 의미에서 나는 이원옥 군과 이승우군이 인천에서 떠난 것을 무한히 애석히 여기는 바입니다. 양장이 떠나면 국력의 미약을 불면함과 같이 금일 인고의 세력이 왕년에 불급하여 가는 것을 보고 적막감을 난금하는 바입니다. 나는 생각하기를 인천학교 운명을 재기시키려면 우선 인천 출신의 총정예부대가 다시 인천에 모여서 한번 서울의 모든 학교와 더부러 패업을 다투워보는데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이 어찌 장관이 아니겠습니까? 여하간 이승우군은 이원옥과 같이 인고의 쌍벽이요 인고의 웅호지장이었는데 금일의 인고는 쌍벽을 다 잃고 웅호를 다 잃어버린 셈이 되었으니 실로 애석한 일입니다.
영부인께서도 서울에 취직하고 계시다니 더욱 기쁩니다. 이원옥군에게 각폭을 올리지 못합니다. 이승우군의 진실한 인격과 불굴의 투지를 누구보다도 높이 평가하고 있는 촌부가 인천일우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오.
書不究言 古友
1957. 6. 4. 길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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